한유민
[한국심리학신문=한유민 ]
아는 것이 ‘독’이 될 때
우리는 흔히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는 것은 분명 ‘독’이 될 수도 있다. ‘지식의 저주’ (curse of knowledge)는 1990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엘리자베스 뉴턴의 연구에서 용어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뉴턴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 수준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고려하지 못하는 인지적 편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피험자들에게 익숙한 노래의 제목을 알려주고 다른 피험자들에게 그 노래를 타인에게 알려주도록 한 결과, 노래를 알고 있는 피험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 노래를 쉽게 알아들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는 지식 수준의 차이, 즉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지식의 저주’로 인해 전문가나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일반인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곤 하는데, 이 현상은 교육, 기업,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내가 부족한 건가?
‘지식의 저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지식 수준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고려하지 못하는 인식의 왜곡이다. 가장 흔한 사례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대학 교수들은 고학년보다 1학년 새내기들을 가르칠 때 특히 더 애를 먹곤 한다. 한정된 수업 일수 때문에, 기초부터 가르칠 수 없으니 학생들의 어려움을 앎에도 불구하고 일단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로’ 학생들이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초 내용을 생략해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전문 지식 수준에 맞춰 강의를 진행하다 보면 어려움은 학생들의 몫이 된다. 그 날의 수업 내용을 통째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더러, 대학교 특성 상 교수에게 메일을 통한 지연된 답변을 받아야 하거나, 동기들과의 지식 수준도 천차만별이라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질문을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교수는 때로 열정이 넘쳐 자신의 전문성과 지식을 과시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기 힘들어한다. 교수의 저명함을 기대하며 수강을 신청했으나, 실망스러운 강의력에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금메달리스트는 좋은 코치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례 뿐만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한 코치들은 오히려 자신의 햇병아리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을 가르칠 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 수준에 맞춰 복잡한 기술과 전술을 설명하다 보니 좋은 훈련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다.
또한, 정보가 풍부한 판매원이 정보가 부족한 고객의 판단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품 판매에 실패하는 경우, 발표를 준비한 발표자는 자료에 대한 많은 연구와 시간 투자를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했지만, 막상 청중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발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지식의 저주’를 받은 사례가 된다.
교수님께서 저주에서 풀려나려면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더 이상 좌절하고 싶지 않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안 배웠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저주'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발생한 ‘의사소통’의 문제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수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지식 수준을 인지하고 청중의 수준을 고려하여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정보나 배경을 여러 번 강조하고 설명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간중간 상대방의 이해도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설명을 추가하거나, 최종 피드백을 통해 전달 방식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면,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고 더 나은 전달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Camerer, C., Loewenstein, G., & Weber, M. (1989). The curse of knowledge in economic settings: An experimental analysi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7(5), 1232-1254.
Fisher, M., & Keil, F. C. (2016). The curse of expertise: When more knowledge leads to miscalibrated explanatory insight. Cognitive science, 40(5), 1251-1269.
Tullis, J. G., & Feder, B. (2023). The “curse of knowledge” when predicting others’ knowledge. Memory & Cognition, 51(5), 1214-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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