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한국심리학신문=김진현 ]
정신질환자의 고통은 다차원적이다. 결코 하나의 시선에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원인도 복합적일 뿐만 아니라, 그 증상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질환적 요소를 넘어서 그들의 고통을 다차원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중복이환이다.
중복이환의 특징
중복이환이란 다른 두 질환을 동시에 겪는 것을 의미한다. 흔한 중복이환의 예시로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 정신질환자의 대다수는 이런 중복이환을 지니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46.4%는 정신질환을 일생 중 한 번은 겪으며, 27.7%는 두 개의 중복이환을, 17.3%는 세 개의 중복이환을 지닌다. 그 중 특정 정신질환은 특히 더 높은 확률로 중복이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정신질환에는 우울 장애, 불안 장애, 트라우마, 성격 장애 등이 있다. 서울대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주요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약 73%가 중복이환을 겪는다고 한다.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인 이유
그렇다면 중복이환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질환에서 중복이환은 그저 두 개의 질병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서 그 심각성이 그치지 않는다. 한 연구에서는 중복이환의 경우 각 질환의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밝혀진 바 있다. 이에 반해 중복이환 환자들은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을 뿐더러 치료 경과도 상대적으로 더디다. 더불어 이런 경우 질환의 진단도 어려워지는데, 질환들의 증상이 겹치거나 환자 스스로 각 질환에 따른 증상을 구분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표적 예시로 ADHD가 있다. ADHD를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불안 또는 우울 장애에 빠져 중복이환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불안이나 우울 증세를 아무리 치료하려 하더라도 근원적인 ADHD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두 개 이상의 질환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기에 한 개만 치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중복이환의 경우 치료 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특히 약물 치료를 하는 경우 각 질환에 맞는 약을 처방하되 함께 복용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더 확대해서 보면 중복이환은 자살 위험의 증가, 사회적 지지의 감소, 그리고 전반적 삶의 질 감소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이기도 했기에 더욱 중대한 문제로 다가온다.
중복이환의 불투명성
하지만 이러한 중복이환에 관하여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학자들도 있다. 중복이환에서 두 질환으로 구분되고 있는 질환들이 과연 진정으로 다른 질환인지, 아니면 같은 질환의 다른 발현 방식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현대에 이르러 각종 진단 기준을 세우면서 자연스레 중복이환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이것이 의학계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다.
로빈스 교수는 이에 관하여 DSM-3 작성에 자신이 기여할 때 ‘동일 증상이 다른 질환에 등장하면 안된다’는 규칙을 썼으며, 이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마리오 마지 교수는 진단 카테고리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한 명에게 진단되는 질환도 더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시선에서 의료계가 다양한 차원에서 진단하려는 목표 하에 진단명이 세부화한 것이다. 이는 결국 각 질환마다 중복되는 부분들을 형성했고, 이를 실제 의료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불확실한 상태이기에 실제로 중복이환이 아니어도 무분별하게 진단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중복이환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이들도 이 개념이 학계에 가져오는 새로운 흐름을 반기고 있다. 위 내용을 작성한 마리오 마지 교수는 이런 중복이환은 정신질환을 각자 분리된 질병이 아닌, 다양한 정신의학적 요소들의 복합적 융합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반대로 만약 실제로 분리된 질병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았다면, 중복이환은 우리로 하여금 진단 기준이 아직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끌어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에서 중복이환은 분명 주목할만한 주제이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중복이환을 겪는다는 사실은 정신질환이 일종의 연쇄 작용처럼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확률마저 높다는 현실을 깨닫도록 한다. 그러나 그 무게만큼 정확하고 책임감 있는 진단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그 정확성은 이토록 변화무쌍한 정신의학의 세상에서 계속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이다.
무의미한 중복 진단은 불필요한 치료로, 불필요한 치료는 또다른 고통으로 찾아온다. 이런 다차원적인 세상은 복합적인 주의를 요한다. 그래야 비로소 조금씩이나마 정신질환이라는 벽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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