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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기훈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 뱅크

표절은 모든 예술가에게 딜레마와 같다. 이제껏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추구하는 예술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의도적으로 베끼는 행위는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표절의 범위를 두고 여전히 많은 설왕설래가 오가는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부분은 어느정도의 유사성부터 표절로 인정받는지, 표절과 오마주가 구분되는 지점은 어디인지 등이었다. 모두 명확한 구분이 불가능해 대중이 유사성을 느끼고 비판이 가해지는 경우에도 법적 다툼에서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많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멜로디의 범위는 한정적이고 그 중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악을 창작해야 하는데다 특정한 박자나 악기의 사용이 장르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표절의 범위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표절의 의도성을 두고 새로운 논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바로 '무의식적 표절'을 둘러싼 논란이다. 창작을 시작하는 지점부터 특정한 노래를 떠올리며 그와 유사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의도성이 담긴 표절행위다. 그러나 분명 번뜩이는 영감으로 시작한 창작물이 만들고 난 후 알고보니 무의식속에 잠재되어있던 다른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면 표절로 지탄받아야 할까? 수천년간 이어져온 음악의 역사에서 비슷한 멜로디의 전개를 완전히 피할 수 있을까?




비틀즈, 유희열도 피해가지 못한 '무의식적 표절'


'무의식적 표절'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대두된 계기는 1971년 비틀즈 출신의 조지 해리슨이 발표한 'My Sweet Lord'였다. 조지 해리슨은 두 천재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의 명성에 가려져 비틀즈 내에서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멤버였으나 'My Sweet Lord'를 통해 비틀즈 해체 후 비틀즈 멤버 중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미국의 여성 그룹 'The Chiffons'가 1963년 발표한 'He's So Fine'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Bright Tunes Music 주식회사가 조지 해리슨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다.


법정에서 두 곡 간의 유사성은 인정되었다. 주된 멜로디의 반복되는 구간에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조지 해리슨 측은 'My Sweet Lord'를 창작할 당시 두 곡의 유사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결국 재판부는 조지 해리슨이 창작 당시 'He's So Fine'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멜로디를 창조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들어본 해당 곡이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으며 유사성이 높다는 근거로 조지 해리슨 측의 패소를 판결했다. '무의식적 표절'이라는 개념이 법적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판결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표절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무의식적 표절을 둘러싼 논쟁이 점차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2년 사카모토 류이치의 저작물에 대한 표절 논란에 휩쓸린 유희열이 있다. 유희열은 본인의 표절을 인정하며 "작곡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두 곡의 유사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라 무의식중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유사한 진행방식으로 곡을 썼다"며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 무의식적 표절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최초의 사례이다.




무의식적 표절은 무의식적일까?


의식과 무의식, 잠재의식 등 인간의 의식상태에 대한 분류는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에 의해 최초로 제시되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꿈을 통해 의식의 영역에서 구현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이는 칼 융 등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영역에서 연구되었다. 그러나 주류 심리학 및 정신의학에서는 무의식을 단순히 의식에 따르지 않은 활동으로 지칭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해도 의식적 행위인 작곡을 통해 발생한 표절행위를 무의식적이라 지칭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무의식에서 발현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표절임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이전에 들은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은 '비의도적 표절'로 규정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지칭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유사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의도와 관계 없이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모든 예술가에게 요구된다. 또 비의도성을 방패로 표절된 창작물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유희열, 사카모토 류이치 표절 인정... "무의식 중에 유사한 작곡".한겨레.정혁준.2022.06.25.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표절과 위작,임관혁.법률신문.2023.07.12.

문화 예술계 잇단 표절논란...'무의식적으로 베꼈어도 표절'.김병일.한국경제.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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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7-23 1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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