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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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빨리 앞으로 와줘.. 민재(가명)가 나 엄청 때렸는데 나 여기 문제 생겼어”
지난 4월 경남 거제시에서 故 이효정 씨가 전 남자 친구 김 씨에게 폭행당한 날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한 내용 중 일부다. 당시 이 씨는 잠을 자던 중, 자신의 주거지에 무단 침입한 김 씨로부터 30분간 목 졸림과 얼굴 폭행을 당했다. 그는 결국 외상성 경막하 출혈 등의 상해를 입고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열흘 뒤 사망했다.
급증하는 교제폭력, 구속률은 2%?
교제폭력이란,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 및 위협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신체적 폭력을 비롯한 돈을 갚지 않는 등의 경제적 폭력, 일상을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간섭하는 등의 정신적 폭력을 모두 포함한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의 「치안전망 2024」에서 인용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2018년 4만 6680건에서 2022년 7만 790건으로 약 65% 늘었다. 또한 교제폭력 형사 입건 건수는 2020년 8951건에서 2023년 1만 3939건으로 약 55% 증가했다.
해마다 교제폭력 신고 건수와 적발인원은 늘고 있지만 가해자 구속률은 평균 2% 안팎에 머물고 있다. 최근 5년간 검거된 교제폭력 피의자 총 5만 6079명 중 구속된 비율은 2.21%이며 올해는 1.87%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지속되는 교제폭력, 절규하는 피해자들
교제폭력은 보통 친밀한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범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를 꺼릴 때가 많다. 특히 교제폭력은 형법상 폭행 및 협박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치 않는 상황이 다수 발생한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이 씨 역시 반의사불벌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재작년부터 가해자와 교제를 시작하였으며 당해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총 11차례 경찰에게 피해 구조를 요청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사유는 ‘남자친구의 반복된 폭행’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고인의 반복된 신고에도 번번이 풀려났다. 이 씨가 신고 직후 이뤄진 초동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며 수사가 종결됐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대다수의 교제폭력의 본질은 ‘강압적 통제’에 있다. 강압적 통제는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비난과 모욕, 가족으로부터의 고립 등의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가정폭력 피해 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교제폭력 피해자의 87.7%가 가해자로부터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 가해자가 강한 소유욕을 기반으로 연인을 통제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참아내는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이것이 교제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우리 사회는 연인 간의 통제 행위를 하나의 애정의 표현으로 치부하는 풍조가 짙다. 그러나 이는 모두 이기적인 자기 욕구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은 친밀한 애착 관계의 형성을 갈망한다. 단, 애정에 대한 갈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연인은 소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사랑해서 집착한다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당신의 집착이 연인의 삶에 약간의 강압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다.
교제폭력, 실질적 피해자 보호책 절실해
오늘날 교제폭력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 및 지원할 수 있는 수단은 턱없이 부족하다. 교제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시킬 수 있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들이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아 현행법상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제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교제폭력에 관한 법안은 약 14건이 발의됐으나 이는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할 시에만 반짝 논의가 이뤄진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발 빠른 대응과 신속한 수사에 앞서 사법적인 측면에서의 정책 강화 및 보완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참고문헌
조선일보, [Website], 2024, 사랑이란 가면을 쓴 범죄, 안전하게 이별하고 싶다
한국일보, [Website], 2017, [좋은 이별] “넌 내 거야” 통제하려는 마음이 '이별 범죄'로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220446170725
한스경제, [Website], 2024, 교제폭력 신고 하룻새 194건…“반의사불벌죄 안돼” 법적 장치 마련해야
https://www.hans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8675
파이낸셜뉴스, [Website], 2024, 쯔양까지 당한 '교제폭력'…'반의사불벌 폐지' 다시 수면 위로
https://www.fnnews.com/news/20240717142238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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