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민
[한국심리학신문=한유민 ]
기억에도 맥락이 있다
우리는 종종 유튜브에서 기억력을 향상시켜주는 음악, 공부할 때 듣는 음악 등을 이용하여 학습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이때, 음악과 같이 상황과 분위기에 대한 ‘기억’은 경험한 사건과 정보를 저장하고 회상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에서는 학습이 이루어지는 환경이나 상태가 학습의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상태의존 학습(state-dependent learning)'이다. 상태의존 학습은 특정한 환경이나 정서적 상태에서 학습한 정보가 동일한 상태에서 더 잘 회상된다는 이론으로, 기억과 학습의 맥락적 연결을 강조한다. 본 기사에서는 상태의존학습의 개념을 살펴보고, 관련된 연구 결과와 일상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이 현상이 우리의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자 한다.
상태의존 학습에 대한 연구와 일상의 사례들
상태의존 학습의 개념은 1975년 고든 바우어(Gordon Bower)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들은 실험을 통해 특정한 환경에서 학습한 정보가 동일한 환경에서 더 잘 회상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먼저, 바우어는 참가자들에게 물속에서 단어를 학습하게 한 후, 동일한 환경(물속)과 다른 환경(육지)에서 회상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물속에서 학습한 집단이 물속에서 육지보다 더 높은 회상률을 보였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는 학습과 기억이 단순히 뇌의 기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태나 환경적 요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상태의존 학습에 대한 연구는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특정한 음악을 들으면서 단어를 학습하도록 했다. 이후, 동일한 음악을 들으면서 단어를 회상하는 과정을 진행했을 때, 참가자들은 더 높은 기억 회상률을 보였다. 이는 음악이 학습 당시의 상태를 재현함으로써 기억을 촉진했음을 나타낸다. 앞서 언급했던 유튜브 음악의 예시처럼, 음악과 같은 학습 환경도 기억의 형성과 회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상태의존 학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향수나 음악을 들으면 과거의 특정한 기억이 떠오르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는 그 향수나 음악이 과거의 특정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험을 준비할 때,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환경과 유사한 환경에서 공부할 경우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뿐만 아니라, 범죄 현장 검증에서도 용의자가 사건을 재연할 때 상태의존 학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하는데,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환경이 기억 회상에 도움을 주어 사건의 세부 사항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태의존 기억은 용의자 진술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상태의존 학습은 감정적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학습한 정보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더 잘 회상되며,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슬픈 기분일 때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더 쉬운 경우가 많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우울한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는 그 사건이 우리가 기억하는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험 운용을 위해 환경도 훈련할 수 있다
맥락 속의 기억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교육, 범죄, 심리 치료 등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여기서 우리가 참고하여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점은, 특정한 환경에서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제한된 시험장 환경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수험장과 비슷한 장소에서 공부하고, 그 장소의 특징을 기억하며 모의고사를 통해 긴장감을 훈련한다면 멘탈 관리와 기억력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시험장과 비슷한 소음의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상태의존 학습의 메커니즘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기억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Bower, G. H. (1981). Mood and memory. American psychologist, 36(2), 129.
Bower, G. H. (1987). Commentary on mood and memory.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25(6), 44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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