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희
[한국심리학신문=허준희 ]
믿을 수 없는 사고, 믿을 수 없는 인간성 상실
지난 7월 1일 밤 역주행한 승용차로 인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가 벌어졌다.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교통사고였기에 전 국민은 놀라움과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우리를 더 놀라게 만드는 일은 이다음에 일어났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 익명의 사람들이 추모를 빙자한 조롱 섞인 메모를 남겼고 많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희생자들을 향한 충격적인 조롱 글이 단시간에 확산되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조롱하는 쪽지는 희생자들을 ‘토마토주스가 되어버린 분들’이라 칭하며 사고 현장에서 피해자들이 흘린 피를 ‘토마토 주스’에 빗대어 표현했다. 이러한 쪽지는 조롱을 넘어서 모욕적이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너네 명복을 빌어. 너의 다음 생을 응원해. 잘가”라며 희생자들에게 반말 섞인 쪽지를 남기는가 하면 안타까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하트 이모티콘을 사용하였다. 진심 어린 추모가 아닌 조롱의 의도가 다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저런 사람들 제정신 아니다.”, “희생자들에게 저런 말을 한다니, 사람 맞냐?”와 같은 분노를 표출했다. 더 나아가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처벌해야 한다.”라며 법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익명으로 혐오 표현을 배설하는 이유는?
왜 자신을 드러낼 용기도 없으면서 익명으로 혐오 표현을 내뱉을까. 이유는 간단히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익명을 통해 충동적인 본능을 탈억제(Disinhibition)하게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규범과 규제는 하루 종일 우리를 억압하지만, 익명성이라는 탈출구를 통해 억압받던 본능은 솟구쳐 나올 수 있다. 꽁꽁 숨겨두던 비방과 욕설은 물 밀려오듯 입 밖으로 새어 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은 근시안적으로 변하며 당장 눈앞에 놓인 상황만 보고 장기적인 관점은 놓치게 된다.
두 번째는 익명성을 통해 ‘인정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사회에선 타인의 시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기서 익명성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핵심 열쇠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하는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남을 공격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로 인해 타인에게 한번 인정을 받으면 더 이상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세 번째는 좌절과 관련이 있다. 계획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사람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공격적인 욕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수 중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욕설하는 행위를 통해 좌절감에서 조금이나마 회피하고자 한다. 또 누군가는 좌절감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린다. 이렇게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왜 온라인에서 혐오 발언은 더 심해질까
사회적으로 큰 일이 터지면 온라인에서 해당 사건은 논란의 무게가 가중된다. 요즘에는 욕설과 비방이 섞인 표현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고 익명성이라는 가면에 숨어 혐오적 발언을 내뱉는 것에 서슴지 않아 한다. 이들은 뭉쳤을 때 더 큰 심각성을 띤다. 에코 챔버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에코 챔버란 온라인에서 자신과 비슷한 의견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입장을 반복해서 접하며 그것이 점차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을 에코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에 비유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평가와 혐오의 대상은 그들이 속한 집단을 제외한 모두가 대상이 된다. 또한 내가 내뱉은 욕설은 같은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할 수 있다. 집단에서 유머의 역할을 크다. 나의 위상을 더 높여주고 다른 사람과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비방과 욕설이 그들의 유머가 되고 온라인에서의 신분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에코 챔버 효과에 의해 악플러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똘똘 뭉쳐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그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집단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잘못됨을 인식하는 능력과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공동체 성원이 집합의식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혐오 표현이 사용된다.
이제는 형사적 처벌이 필요할 때
무분별하게 남을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들은 형법 제308조에 의해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주의할 점은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친고죄란 사자의 친족이나 자손만이 고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위 사실 적시 여부에 따라 입건 여부가 다르다.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조롱 표현 중 허위 사실 적시로 인정이 안 된 것에 대해 경찰은 조사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가볍게 여기는 말끝엔 분명히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참고문헌
1) 나은영.(2015.6).인터넷상의 야누스, 악플의 사회심리학.언론중재, 2015년 여름호(통권 제135호).18-20
2) 김민선.(2023).청년세대의 온라인 성별 혐오표현 사용에 관한 연구(석사).고려대학교 대학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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