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한국심리학신문=신경민 ]
2024년은 바야흐로 야구 대유행의 시기다. 프로야구는 코로나19 시즌을 제외하곤 2011년부터 꾸준히 연 누적 관중 수 600만 명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이미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올해 프로야구 관람의 인기는 특히 더 심상치 않다. 8월 초 기준, 시즌 누적 관중 수가 벌써 74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다 누적 관중 수가 2017년 84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프로야구의 엄청난 흥행과 유행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대유행에서 주목할 점은 Z세대의 유입이다. 기존 야구의 이미지는 기성세대, 특히 중년 남성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국내 최대 인기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프로야구는 성별 불문, 연령대 불문 누구나 쉽게 즐기는 관람 스포츠가 됐다. 실제로 프로야구 티켓 판매를 담당하는 티켓링크와 인터파크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티켓 구매 비율이 각각 38.1%, 42.1%로 연령대 중 가장 높았고, 여성과 남성 구매 비율은 거의 비등하며 심지어 여성 구매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중년 남성층을 넘어 MZ세대까지 모두 사로잡은 야구의 매력은 대체 뭘까?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명 ‘야알못’들은 이렇게 묻는다. “야구팬들은 왜 항상 화나 있어?” 어쨌든 한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이 분명히 있는데, 왜 모든 팬이 팀이 이기나 지나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냐는 말이다. 또 그러한 의문은 “그럼 왜 그렇게 화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야구를 보는 거야?”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야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야구팬들에겐 야구를 보며 화내는 순간이 역설적으로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경기의 승패보단 심리적 몰입 경험이 관람 만족감과 행복에 큰 역할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에 따르면, 몰입이란 어떠한 행위에 집중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빠져든 상태를 의미하며, 최상의 심리적 에너지를 발휘하여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최적의 경험이다. 몰입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과 지각을 한곳에 집중하게 되고, 자의식 부재 및 주위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이러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포츠 관람이다. 평소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어떤 스포츠 경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여 진심으로 응원하고, 희열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인생의 행복을 위한 일상 속 몰입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몰입에 의해 오는 행복은 우연이 아닌 본인의 의지에서 오는 것이므로 더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연구는 스포츠 관람자의 몰입 의지와 노력에 높은 가치를 두고, 스포츠 관람을 통한 몰입 경험이 관람 만족감과 행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실제로 국내 프로야구 관중을 대상으로 한 심리적 몰입과 야구 관람에 관한 다수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몰입은 프로야구 관람의 주요 요인이며, 경기 관람 만족도와 재관람 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 경기에 고도 집중함으로써 열광과 열정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심리적 몰입 경험이 직접적으로 관람 만족도를 증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 몰입은 팬들의 구단 충성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몰입 경험을 통해 얻은 관람 만족이 재관람 의사를 야기하고, 그러한 경험의 반복이 팀에 대한 높은 충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응원 팀의 승패가 관람 동기, 관람 만족 및 재관람 의사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마다 조금씩 다른 결과를 보인다. 국내 프로야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정리해보면, 승리 팀이 패배 팀보다 경기 관람 후 만족감과 재관람 의사가 더 높게 나타나긴 하지만, 심리적 몰입을 경험한 팬은 승패와 관계없이 팀을 향한 강한 지지를 보낸다. 또한, 일반적으로 성취감과 같은 관람 동기는 오락 및 일상 탈출 요인에 반해 관람 만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MZ세대와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프로야구 관람 동기와 만족감을 조사한 최근 연구에서도 두 세대 모두에서 관람 만족 요인 중 응원 분위기 및 현장 분위기 등 ‘분위기 만족’이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낸 반면,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 팀에 대한 자부심 등 ‘구단&선수 만족’은 가장 낮은 빈도를 나타냈다. 이 또한, 응원 팀의 승패보다는 현장에서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 6일, 각 구단이 144경기를 해내는 스포츠인 만큼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응원 팀의 패배를 월등히 많이 경험해야 하는 프로야구의 특성상, 야구팬들은 늘 경기 결과와 선수들에게 화나 있고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드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매번 야구를 관람하며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야구에 대한 심리적 몰입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야구 관람 중 느끼는 분노와 희열 등의 강렬한 감정의 경험을 통해 얻는 행복감이 야구팬들이 야구를 계속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프로야구만의 심리적 몰입 유도 전략: 독보적 응원문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심리적 몰입은 다른 스포츠 관람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프로야구가 유난히 두터운 팬덤을 잘 유지하고, 새로운 유입을 꾸준히 만들어내는가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스포츠에 비해 현저히 많은 경기 수는 심리적 몰입을 통한 유희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지만, 이러한 쉬운 접근성이 프로야구 흥행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특화된 프로야구만의 몰입 경험은 바로 독보적인 응원문화에서 온다.
국내 프로야구 관람 만족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열성적인 응원에서 비롯되는 경기 현장의 생동감과 현장감, 그리고 연대감이다. 국내 프로야구의 응원문화는 해외에 소개될 만큼 독보적이다. 선수마다 등장 곡, 응원가 및 안무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구단별 응원가와 타 구단 견제 곡, 안타 및 삼진 구호까지 있다.
이를 같이 따라 부르다 보면 경기 내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매 경기 열정적인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그리고 이에 호응하는 팬들의 응원 소리는 경기장의 분위기를 웅장하게 만들고, 경기 관람의 즐거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다른 잡념과 걱정 없이 오직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러한 응원문화는 연고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프로야구 구단 특성과 합쳐져 팬덤의 응집력과 연대감을 강화하여 야구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내 응원 팀이 진다면 아쉬움은 남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심리적 몰입을 통한 강렬한 유희를 경험했다면 그날 나의 하루는 꽤 행복했던 거다. 그리고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그러한 몰입의 순간에서 느낀 즐거움과 행복은 응원 팀에 대한 애정을 일깨워주는 요소가 되고, 다시금 응원 팀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보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야구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사실 유스트레스(eustress)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가 처음으로 제시한 유스트레스(eustress)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좋은 스트레스’로, 기분 좋은 일이나 어떤 긍정적인 기대와 떨림에서 오는 긴장감을 의미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다양한 유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야구는 심리적 몰입을 통한 즐거움과 유희를 통해 긍정적인 유스트레스를 제공하고, 이는 여가활동을 통한 행복의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야구팬들의 야구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열정이 일상에 큰 활력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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