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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는 글로벌 사회에 와있지만, 정작 개개인은 이전보다 더 고립되기 쉬워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알고리즘은 자신의 평소 생각과 비슷한 정보만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누구나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서 나아가 모두가 각자의 감각을 갖고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자신과 아예 다른 세계와의 우연하고도 이질적인 마주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분절과 갈등이 더욱 거세졌다고 느낀다.


우리가 감각하고 인지하여 내린 판단이 정말 정답이고 진실에 가까울까? 우리는 정보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만드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와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주장이나 정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연말에 그 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탈진실을 채택하기도 했다. 누군가 지어낸 그럴듯한 거짓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시대가 개막한 것에 대한 암울한 진단인 셈이다.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틀린 주관을 확신하기도, 그럴듯한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권력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영화 <다우트>(2008)는 ‘의심’과 ‘확신’에 대한 이야기를 팽팽하게 끌고 나가며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진실이 존재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 주관이 얼마나 불완전한지에 대해 역설한다.



대체 누굴 믿을까요 – 영화 ‘다우트’


영화 <다우트>는 1964년 브롱크스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 부임한 신부 플린은 진보주의자로, 교구에 새로운 정치적 바람을 불러오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알로이시어스 수녀와 번번이 충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스 수녀가 플린 신부와 학교의 최초 흑인 남학생 도널드 밀러 사이 이상한 낌새가 있다는 말을 알로이시어스 수녀에게 전한다. 알로이시어스 수녀는 플린 신부가 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은 채 그 증거를 찾아내려 하며 그를 쫓아낼 계획을 세운다. 계속되는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뒷조사로 화가 난 플린 신부는 그가 있는 교장실에서 최후의 담판을 지으려고 한다.



영화 <다우트> 스틸컷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의심’과 ‘확신’의 문제에서 서로 대비되는 듯 보였던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어스 수녀가 점차 유사해진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양극단에 서서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수호하는 듯 보인다. 알로이시어스 수녀는 ‘의심’하는 인간이다. 학교를 엄격한 규칙 아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원칙주의자다. 반면 플린 신부는 ‘확신’ 하는 인간이며, 보수적인 교회를 진보적으로 바꾸려는 인물이다. 그는 신앙심의 확신을 설교 주제로 삼기도 하고 또 자신이 나아가는 길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알로이시어스의 의심과 플린의 확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플린의 의심, 알로이시어스의 확신, 플린의 원칙과 알로이시어스의 융통성으로 정반대처럼 보였던 그들의 특징들이 점차 섞인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대립각이 첨예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닮아간다. 원칙주의자였던 알로이시어스는 자신의 확신을 위해 스스로 원칙을 깨는 모습을 보이고, 진보주의자였던 플린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원칙을 고수하려 한다. 

 


믿고 싶은 걸 믿는 시대


이들은 분명 시작점이 없는 ‘의심과 확신’ 폐곡선 속에 얽매여 있다. 알로이시어스가 플린 신부를 의심하면서 증거를 찾는 과정은 탈진실 시대의 거짓된 정보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플린 신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 제임스 수녀의 확신 없는 예측만을 증거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의 의심은 여태껏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이 된다. 마치 잔잔한 물에 돌을 던져서 파동을 만들어내듯 그는 자신의 의심을 타인에게 꺼내 보이며 사람들의 생각을 통치하려 한다. 


의심에서 비롯된 입장을 들은 뒤엔 어떻게 될까. 각자의 입장대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플린 신부와 학생 사이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생각한 제임스 수녀는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완곡한 입장에 같이 흔들리는 반면, 밀러 부인의 ‘진실은 중요치 않다’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확신 앞에서는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입장이 무력해진다. 

 


탈진실의 대안은?


인간은 확증 편향에 의해 믿고 싶은 거짓에 쉽게 흔들리며 각자의 진실만을 욕망한다. 그러나 인간 주관의 불완전성을 읍소하며 쉽게 선동되는 인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영화 내내 의심과 확신 속에서 각자의 오만을 수호하는 플린 신부, 알로이시어스 수녀와는 다르게 제임스 수녀는 의심과 확신을 오가며 휩쓸리지만 모두를 포용하고, 그저 모두를 선해하려 하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드러내기에 도리어 완전해지는 인물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낙관적인 회의’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감도 느끼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야말로 탈진실 시대와 싸우는 우리의 단순한 반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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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9-04 19:31:49
  • 수정 2024-09-09 20: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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