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
[한국심리학신문=김나윤 ]
휴대전화로 숏폼을 시청하는 배우 김설현. /MBC 나혼자산다 방송화면 캡처
“(핸드폰 스크린 타임이) 대략 11시간 정도 나오더라고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한 연예인 ‘설현’의 생활 모습은 어딘가 친근했다. 잠에서 깨자 마자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어 숏폼 동영상을 시청했다. 커피를 내리고, 외출을 위해 씻고 화장하는 순간에도 휴대전화는 항상 그녀의 옆에 있었다. 그녀가 자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이유도 운전할 때는 다른 일을 못 하지만, 대중교통을 타면 숏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모습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2023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 1인당 숏폼 플랫폼 월평균 사용 시간은 46시간 29분으로 집계된다. 하루 평균 1시간이 넘는 시간을 15초가량의 짧은 영상의 파도 속에서 보내는 것이다. 오픈 서베이의 ‘소셜미디어‧검색포털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전국 15세~59세 남녀 5,000명 중 68.9%가 숏폼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연령대별 비율을 살펴보면 10대가 85%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82.9%로 그 뒤를 이었다.
간편하게 얻는 ‘패스트푸드’ 식 행복
네이버 웹툰 <모죠의 일지>132화
언젠가부터 소셜 미디어와 영상 플랫폼을 사용하는 필자의 호흡은 짧아졌다. 10분 이상 긴 영상보다는 30초 내외의 짧은 숏폼에 손이 더 잘 간다. 스크롤을 내리며 영상을 직접 고르고, 몇 분가량의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롤을 내림에 따라 끝없이 제공되는 짧은 영상을 바라본다. 여기서 필자의 사고회로는 이렇다:
자극이 마음에 든다->짧은 시간 시청을 한다->엄지손가락의 움직임 한 획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자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지손가락의 움직임 한 획으로 스크롤을 내린다->또 다른 짧은 영상을 본다
사고 회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고 기계적이다. 하지만, 이 점이 숏폼을 미친 듯이 중독적으로 만든다. 손가락을 약간 움직이는 것 만으로 우리는 손쉽게 다양한 자극을 얻게 된다. 피곤하고 바쁜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빠른 행복, 숏폼은 ‘패스트푸드’식 행복을 안겨준다.
21세기의 소마, 숏폼
빠르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숏폼의 모습은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 속 ‘소마’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통제되어 개개인은 특성을 잃고 사회의 부속품으로만 존재한다. 대전쟁 이후 세계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사람은 통제된 환경에서 인공 수정을 통해 정해진 네 가지 계급 중 하나로 태어난다. 개인의 직업과 취미, 쾌락 또한 통제된다. 이 섬뜩한 사회에서 행복을 위한 유일한 복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마약성 항우울제인 ‘소마’다. 우울하고 슬픈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배급되는 소마를 먹고 즉각적인 행복과 쾌락을 얻는다.
“과거가 어떻든 앞으로가 어떻든지 간에 이것저것 따져봤자 골치만 아파져요. 소마 1그램이면 그런 걱정은 다 없어진다니까요.”
소설에는 이러한 인공적인 삶에 반대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집단이 등장한다. 도시 사람들은 이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무시하며, 주거 구역을 분리한다. 이들의 삶의 방식과 그것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후속 기사에서 다뤄보도록 할 것이다.
소마는 아주 간편하고 효율적이다. 한 알의 알약이면 모든 우울과 침체, 좌절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취미를 찾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든 과정은 시간과 돈이 든다. 열심히 투자해도 노력의 끝이 행복일지는 보장할 수 없기도 하다. 이와 비교해서 소마는 버튼을 누르면 쾌락을 주는 자판기와 같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짧은 쾌락을 경계해야 하는가? 즉각적인 행복은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쾌락에는 우리가 분명히 지불해야 할 대가가 존재한다.
숏폼이 뇌 손상을 일으킨다고?
숏폼의 영상은 자극을 위해 만들어진다. 1~2초 안에 사용자를 붙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자극을 받으면 쾌락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많아지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내성이 생겨 점점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임현국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숏폼 중독으로 현실 세계에서 자극을 얻지 못해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성장기에 짧고 빠른 숏폼에 익숙해지면서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습득할 수 없게 되고, 수동적인 정보 제공에 익숙해져 문해력도 떨어지게 된다”며, “행동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 자체가 없어지면서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현상을 ‘팝콘 브레인’이라고 한다. 소소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고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뇌라는 의미이다. 숏폼과 같은 짧은 자극에 중독되면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덜 느끼게 뇌가 변화하는 것이다.
어떤 행복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손에
숏폼이 가져다주는 즉각적인 쾌락과 행복은 우리가 ‘추가로 얻는’ 행복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잔잔한 행복을 얻을 기회를 하나씩 버리며 얻는 쾌락인 것이다. 짧은 쾌락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다른 행복을 잡았던 손을 펼쳐야 한다. 둘 중 어떤 행복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왜 숏폼이 주는 행복이 아닌 다른 행복을 추구해야 하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더 자세히 논해보도록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마약 수준의 중독성 '숏폼'...끊기 어려워 '팝콘 브레인' 만든다 . (2023). https://www.mkhealth.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693.
2). 숏폼도 중독..."뇌 손상 조심해야" . (2023). 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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