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원
[한국심리학신문=이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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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이별을 겪다.
대학생 A군은 2년 전 잠수이별을 겪었다. 가끔씩 잠수이별했던 여자친구의 잔상이 떠오를 때 A군의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자동적으로 잠수이별을 겪었던 당시로 돌아가 그 기억을 반추하고는 한다. '잠수이별 당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무 일도 없었는데, 도대체 걔는 왜 그런 걸까?'
한동안 잠수이별 심리에 골몰한 끝에 A군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라진 건 걔(상대)가 그냥 회피형 인간이었나 보네.' 이러한 나름의 통찰을 바탕으로 A군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담은 '회피형 인간 특징'을 소개하고는 한다. 그의 현란한 스토리텔링에 친구들은 그저 유쾌함을 느낄 뿐이다.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이따금씩 남모를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A군의 몫이다.
회피형 인간썰을 거듭하다.
잠수이별은 상대방이 아무런 설명 없이 연락을 끊고 사라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이별 방식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으며,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끊는 인연과 절연의 경험을 하면서 관계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인간 심리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A군이 겪은 잠수이별은 특히 타인의 심리를 주목하게 한다.
관계 유지 및 이별은 일반적으로 자기와 상대방의 양방향 힘이 작용하는데, 잠수이별은 그렇지 않다. 잠수이별을 당한 대상이 모든 관계의 주도권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쪽이 합리적으로 관계를 맺고 끊을 것이라는 기대를 예고 없이 철회하는 일방적인 힘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A군이 고심 끝에 상대를 '회피형 인간'이라고 결론지은 것은 잠수이별에 적응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려는 이러한 노력마저 기울일 수 없었다면, 그가 이 관계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강렬한 무력감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A군의 거듭된 '회피형 인간썰'은 잠수이별을 겪은 한을 승화하는 작업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애착이론의 원리로 회피형 인간을 돌아보다.
그렇다면 A군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회피형 인간'은 무엇일까? 한 번쯤은 회피형 인간에 대해 들어본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잠수이별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많은 '회피형 인간 특징'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심리학 및 교육학에서 다루는 애착이론을 통해 '회피형 인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개념의 사회과학적 토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A군 단 한 사람의 경험을 근거로 할 수 없으며, 이론적 근거가 없는 설(說)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애착이론에서 발견한 회피형 인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착이론에는 4가지 애착유형이 존재하는데, 이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Mary Ainsworth의 낯선 상황 실험 및 Main의 발견에 근거를 두고 있다. 회피형 인간을 회피형 애착을 가진 대상으로 보았을 때, 낯선 상황 실험에서 회피형 애착이 보인 특성은 무엇일까? 회피형 애착의 유아는 주양육자와 분리 및 재회 시 일관적으로 놀이에 몰입하는 안정된 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르티솔 증가량이 높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 힘든 반응을 억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회피형 애착 유아를 둔 주양육자는 유아의 요구에 대해 무반응할 것으로 예측 가능하다. 따라서 유아는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반응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회피형 인간을 관계에서 무언가 하기를 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는가? 애착이론을 통해 살펴본 회피형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는 아니었다. 관계는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타인을 점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기사는 애착이론의 원리로 잠수이별과 함께 흔히 언급되는 회피형 인간을 살펴보았다. 다음 기사는 애착이론에 대한 오해를 다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1) 오카다 다카시. (2024). 나는 내 안의 애착을 돌아보기로 했다. 초록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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