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정
[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에어컨을 틀고 추석 연휴를 보내긴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모두 최악의 무더위에 시달렸고, 한낮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길거리엔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는 이질적인 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휴가 지나고 나니 그 폭염의 당황스러운 기억이 흐려질 정도로 갑작스레 공기가 쌀쌀하다.
여름이 끝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명확하게 기후 위기에 대해 실감한다. 매년 늦여름에는 언제나 기후 위기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반복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기상학자들은 유독 견디기 힘들었던 올해의 여름이 앞으로 우리가 겪을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공포스럽지만 아마도 사실일 예측을 내놓고, 최악의 폭염을 겪은 그 해 겨울에 최악의 한파가 들이닥치는 확률에 대해 역설한다.
우리는 극단적인 날씨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할 때 비로소 기후 위기 해결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받아들다. 기후 위기는 추석에 에어컨을 트는 풍경처럼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해 우리 삶의 형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남의 일이거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당장 나서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환경은 언제나 후순위 의제로 밀린다
기후 위기를 개인적 차원에서 체감하면서도 막상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기후 위기 문제가 가진 집단적이고 다면적인 특성 때문이다. 일원적이고 명확한 책임 소재가 존재하지도 않고, 해결책과 해결하기까지 걸리는 기간, 비용, 영향력 등을 쉽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기후 위기는 장기적인 문제이며 서서히 진행된다.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짧은 기간 안에 가시적인 이익이나 보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손실이나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즉각적인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온 인간 특성상 기후 위기가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도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도 환경은 후순위 의제로 밀리곤 한다. 경제, 기술 측면과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거나 더 즉각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고 자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른 이슈들에게 밀리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 위기가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공론화되기에는 쉽지 않다. 미디어의 보도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회적 이슈를 결정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며, 기후 문제가 가진 광범위한 영향력과 직접적인 경험으로 심각성을 체감하기가 어렵다는 특성으로 인해 기후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 미디어에 갖는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을 미디어가 결정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론이 바로 의제 설정(Agenda-Setting) 이론이다. 맥스웰 맥콤스(Maxwell MacCombs)(1972) 등의 정의에 따르면 의제 설정 이론은 대중 매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강조하는 이슈를 실제로도 대중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미디어는 단순히 사실 전달이나 확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형성한다. 미디어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수용자들에게 말해주고 특정 속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기후 문제를 우리 사회의 시급한 해결 과제로서 강조하기보다는 현재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다른 이슈들을 더 강조하거나 보도하더라도 개별적 보도에 그치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실제 빅카인즈에서 국내의 주요 전국일간지 기준으로 ‘기후위기’로 검색되는 기사가 2019년 총 381개에서 2020년 1773건으로 급증하긴 했지만, 여전히 보도 빈도가 저조한 수준이었다. 현재까지 보도 빈도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름 등 특정 시기 자연재해에 맞춰 복구 작업이나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등 정치 이슈와 연관되어 있는 보도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기후 위기는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살인적인 날씨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개인에게도, 총체적인 현안으로 기후 위기를 마주하는 사회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죄책감을 갖지만, 사회적으로 유용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고, 관련 보도도 기대에 미친다고 보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관습적으로 미래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즉각적인 신변의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모두가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해결에 대한 더 적극적인 공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개인을 기후 위기 해결 과제에 동원하기 위해 담론을 형성하고 지속적 대응을 가능하게 할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디어 차원에서 기후 위기 관련 보도에 대한 빈도가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후 위기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 단편적인 보도보다는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우리가 기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 문제가 주는 규모가 큰 압박감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 문제에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지려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음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1) 조지 마셜, (2018), 기후변화의 심리학, 갈마바람
2) 이정환, (2020), 누가 이슈의 중요도를 결정하는가: 의제 설정 이론으로 본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와 ‘가장 많이 읽은 기사’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3) 정지영, (2023), 국내 기후위기 언론 보도에 대한 탐색적 고찰 : 미디어 사회적 책임에서부터 어카운터빌리티로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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