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현
[한국심리학신문=조승현 ]
1978년, ‘사이언스’라는 과학 학술지에 신기한 토끼 실험이 소개됐다. 로버트 네렘 박사의 주도로 수행된 이 연구는 토끼들에게 고지방 사료를 먹인 후 콜레스테롤 수치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몇 달 후, 대부분의 토끼는 모두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병 위험도가 높아졌지만, 한 무리의 토끼들만 혈관에 쌓인 지방이 60% 적었다. 과연 무엇이 차이였을까?
따뜻한 말과 손길
비밀은 토끼나 사료가 아닌 그 토끼 집단의 연구원에게 있었다. 다른 집단의 연구원들과 달리 그 연구원은 토끼들에게 사료만 주지 않았다. ‘애정’도 같이 주었다. 사료를 먹일 때 토끼들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엄밀하게 통제된 조건 속에서 진행된 실험이었기에, 여러 번의 반복 실험 끝에 결국 건강한 토끼들의 원인은 연구원의 ‘애정’이라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래빗 이펙트(Rabbit Effect)’라 한다.
다정함은 토끼뿐만 아니라 사람의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다정한 상사와 일하는 직장인의 심장질환 위험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상사에게 존중받으며 지지를 얻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인정과 보상을 받는다고 느낄 때 면역 체계가 강해지고 질병 저항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다정함이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실험과 관찰로 증명되었다.
이와 반대로, 고립되어 있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도 나빠질 수 있다. ‘에이징-US’에 실린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홍콩중문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부정적 정서를 느끼는 것이 1년 8개월 더 노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한다. 무려 흡연하는 행위보다 5개월이나 더 앞선 수치이다. 행복하지 않다는 부정적 감정으로 인한 만성 염증이 세포와 중요 장기를 손상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별적이라고 생각한 개인의 건강은 알고 보니 사회적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것이다.
컬럼비아대학 메디컬센터의 정신의학 교수 켈리 하딩의 <다정함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례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짧게 소개하자면, 책의 저자인 켈리 하딩은 의사로 근무하며 의학적으로는 건강한 상태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질병이 있음에도 건강하고 밝게 살아가는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건강과 무관해 보이는 가족과 친구, 이웃 간의 친밀한 관계, 사는 곳, 직장, 교육 등 사회적 요인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끌어낸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타인과의 유대, 다정함을 느껴야 한다. 다정함은 일상에서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고, 우리가 만들 수도 있다.
다정함이 담긴 말과 행동이면 무엇이든 좋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포옹이나, 부담스럽다면 쓰다듬어주는 것이나 악수도 좋다. 심지어 미용사의 정성이 담긴 손길처럼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
스킨십뿐만 아니라 따뜻한 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다정한 눈인사만으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 안에만 담아두는 것만으로는 상대방이 알아차리기 힘들다. 부끄러워도 눈을 마주치고 반갑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건네보자. 상대방 또한 반갑게 당신의 인사에 화답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일들이 빠르게 처리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정함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일과 피곤함에 치여 살아 내 앞가림 하기도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나 자신에게도 무심해지며 개개인의 정신건강도 피폐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도 하고,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다. 귀찮거나 ‘굳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정한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건강을 위해 타인에게 먼저 다정함을 건네보자.
*참고문헌
1) Robert M. Nerem et al. ,Social Environment as a Factor in Diet-Induced Atherosclerosis.Science208,1475-1476(1980).
URL :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7384790
2)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좋은 의사보다 좋은 상사가 건강에 더 중요” 켈리 하딩 컬럼비아 의대 교수
URL : https://biz.chosun.com/notice/interstellar/2022/02/12/5LY7TEUGWBCDDLPTCUXJHP35JI/
3) “때론 흡연보다 더 나빠” 최신 연구로 본 외로움과 건강 상관관계
URL : 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4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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