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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노상현 ]



메멘토 모리,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해라”.

 

만약 우리가 100살까지 살 정도로 운이 좋다면 5,200주를 살 수 있다. 당신이 지금 25살이라면 100살까지 3,900주가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70세까지 산다면 2,340주가 남았다. 대략 2,000주만 지나면 당신은 슬슬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우주의 수십억 년이라는 긴 역사에서 우리는 한순간에 불과하고, 우리가 사는 곳이 평범한 수 조개의 행성 중 하나라는 사실들을 말이다. 

 

우리의 삶은 그다지 길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순간 지나가는 점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니체의 '허무주의'


 

그 답을 니체의 ‘허무주의’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니체가 활동해온 19세기는 과학적 탐구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인해 ‘절대적인 것 (신, 절대왕정, 신분제도)’이라고 믿어졌던 것들에 대한 의심이 생기던 시기였다. 이러한 의심은 점차 인간이 의존할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로 이어지며, 결국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거나 추구할 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가 등장하였다.

 

허무주의라고 하면 세상 및 인생을 비관적으로 해석하는 ‘염세주의’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주장한 허무주의는 그와 다른 ‘능동적 허무주의’였다. 

 

니체는 우리가 삶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자체를 긍정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 무의미함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무의미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내가 아닌 세상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절대적인’ 무언가가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주장한 ‘능동적 허무주의’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어떠한 목적도 없다. 우리는 우주의 주인공도 아니며, 그저 우주의 먼지,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찰나의 무언가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것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며 어떠한 변화도 끼칠 수 없다. 

 

혹시 이 말을 듣고 존재론적 두려움이 느껴지는가? 우리는 이 두려움을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걷어낼 수 있다. “어쩌라고? 어차피 내 인생은 한 번뿐인데?”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짧고 덧없는 우리의 한 번뿐인 삶, 남들이 만든 기준 혹은 가치에 이끌려 세상의 부품으로만 살다가 떠날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내 삶의 기준과 가치를 직접 정해 주도적으로 살다가 떠날 것인가?




<출처>

1) 한눈에 보는 세상. (2023). 낙관적 허무주의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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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1-05 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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