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빈
[한국심리학신문=김다빈 ]
영화 아이, 로봇에서 윌 스미스는 로봇들이 인간의 작업 대부분을 대신 수행해 주는 세상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로봇 친화적인 세상에서, 로봇 불신자인 그가 유일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사회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갈등을 상징한다. 이는 마치 디지털화가 가속된 현대사회에서 일부 시니어들이 디지털기기 앞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기술이 발전해 세상은 더 편리해졌지만,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동일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키오스크 앞에서의 심리적 압박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한 뉴스가 떠오른다.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연세 드신 할아버지가 매장 내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주문하려다 결국 포기하고 매장을 떠난 이야기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화면을 터치해도 주문이 되지 않아 당황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많은 시니어들이 겪는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경험은 시니어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겪는 심리적 부담과 세대 간 기술 격차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시니어들이 겪는 세대 간 격차와 심리적 갈등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보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은 디지털 기기에 대한 통제나 선택권이 부족하여, 정보화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은 시니어들의 사회적 고립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게다가 노인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가진 ‘연령주의(ageism)’라는 사회적 편견이 시니어들에게는 큰 장벽이 된다.
시니어들은 이러한 연령주의적 편견에 직면하면서 자아 효능감이 크게 저하된다. 자아 효능감이란 개인이 특정 과제를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정도로, 이는 심리적 안정과 삶의 만족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젊은 세대의 것”이라는 인식은 시니어들로 하여금 자신이 기술을 다룰 능력이 없다고 여기게 만들며, ‘나는 뒤처졌구나’라는 자기 낙인을 심어준다.
심리적 위축과 학습된 무기력
패스트푸드점, 콜택시, ATM기기 등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실패하면서 접촉을 꺼리게 되는 현상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과 유사하다. 학습된 무기력은 반복적인 좌절로 인해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고, 더 이상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반복된 실패와 거부 경험은 '나는 못 해'라는 무력감을 심어주며, 이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쉬운 클릭이 시니어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셀리그만 박사는 후속 연구를 통해 낙관적 사고, 긍정적인 관계와 참여 경험이 학습된 무력감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가속화되는 디지털사회 속, 디지털 접근의 용이성과 주변의 지지는 시니어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자아 효능감을 극복하고 디지털기기와 심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작은 목표에서 큰 목표로
우선, 작은 목표에서 큰 목표로 접근하여 시니어들이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단계에서는 디지털기기를 켜고 끄는 것, 기본 설정을 바꾸는 것 등 간단한 동작을 익히도록 한다. 이후에는 버튼 조작해 보기, 검색하기와 같은 일상적인 작업을 연습하면서 성취감을 쌓아간다.
이렇게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서 시니어들은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숙함을 느끼게 되며, 점차 더 큰 목표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본인의 취미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저장하거나, 이를 친구나 가족에게 공유하는 단계로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신감을 쌓고,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거나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사회적 연결과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디지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조력자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시니어들이 디지털 사회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지지자이기도 하다. 가족과 친구의 격려와 도움을 통해 시니어들은 불안감을 해소하고 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시니어가 정보화 사회에서 자존감을 높이며 역할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니어의 디지털웰빙을 위하여
디지털 웰빙이란 사람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건강하게 소통하고 정보에 접근하며 균형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을 단순히 기술적 결함이나 연령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심리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기술은 우리 모두의 손끝에 있으며, 그 손길이 더 넓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시니어의 시각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천천히 낙관적인 학습을 이뤄간다면 진정한 디지털 포용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참고 문헌
1) 류수민, 유은혜. (2023). 노령층의 키오스크 사용을 통해서 본 사회의 차별과 배제 : “저걸 통과해야 먹을 수 있다”. 현상과인식, 47(1), 107-136, 10.46349/kjhss.2023.03.47.1.107
2) 정민경, 유은. (2022). 고령자의 심리적 요인을 고려한 키오스크 사용경험 개선 제안.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5(3), 113-127, 10.15187/adr.2022.08.35.3.113
3) 김효정, 이진명. (2018). 시니어 소비자의 모바일 디지털정보 활용의 결정 요인: 2차적 디지털 격차를 중심으로. Family and Environment Research, 56(6), 49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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