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정
[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지난 11월 5일 치러졌던 미국의 47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미국 대선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만큼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전 세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각종 흑색 선전과 혐오 표현이 난무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급증한 증오 콘텐츠와 극단적인 의견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러한 현상들 때문에 지난 4일,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로 미국민의 70% 가까이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AFP 통신이 전한 바 있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심리학회(APA)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60%가 대통령 선거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뒤늦은 후보 교체, 암살 시도,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점점 극단적으로 오고 가는 논쟁이 미국민들로 하여금 현실 세계를 보다 폭력적으로 인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선거가 치러지는 때에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며 절망감을 느끼거나 우울감을 호소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체념하고 정치 혐오에 빠져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근 선거철 우울감을 발생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SNS상에서 급증하는 혐오 표현과 증오 콘텐츠를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규제가 덜한 SNS일수록 더 자극적인 형태로 더 빠르게 전파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이상적인 공론장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인터넷과 SNS 플랫폼에서 오히려 더욱 극단적인 논쟁과 증오 콘텐츠를 양산하게 된 것은 왜일까?
집단적일수록 더 극단으로 간다, 집단극화
인터넷이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이상적인 발화 공간으로서의 공론장 역할을 하길 기대했던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했던 평범한 개인의 의견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인터넷은 같은 이념이나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게 뭉친 집단은 점점 구속력과 응집력이 높아져 집단에 깊이 관여하고, 다른 대안들을 현실성 있게 평가하려는 동기를 억압하면서 생기는 ‘집단 사고’ 양상을 보인다.
집단 사고는 집단 극화로 확대된다. 집단 극화란, 사람들이 개인일 때보다 집단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보다 과격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집단 극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최근 인터넷 상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현상들은 익명 상황에서 집단의 특징적인 정체성이 강조되어 개인의 개성은 사라지고 집단의 특성만이 남으면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집단의 정체성만 부각되었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구성원들 사이에 더 큰 동조가 발생하고 더 극단적인 의견이 등장하는 것이다.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비방하는 ‘인터넷 훌리건’ 의 폐해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갈가리 찢겨나가는 세상, 사이버 발칸화
이렇게 인터넷에서 뭉친 집단 사이 의견의 극화가 발생하면 결국 인터넷은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지 못하고 각자의 영토로 갈가리 찢겨 나가기 마련이다.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라는 개념은 바로 그런 현상을 의미한다. 사이버발칸화란 인터넷 공간에서 관점과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다른 집단과 적대하는 인터넷 분열 현상을 말한다. 기술, 경제, 정치, 내셔널리즘, 종교, 이해관계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는 각자 이해관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공통적인 정서를 공유하며 가상 파벌을 형성한다. 이는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더욱 강화하고 위험하게 만드는 왜곡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경계해야 할 현실이다.
누가 공론장을 방해하는가
인터넷은 결국 증오 콘텐츠와 흑색선전을 더 빠르게 전파하고 더 극렬한 논쟁을 낳았으며 자신과 견해가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상대를 적대하는 소국들로 분열되는 ‘발칸화’의 위험을 더 많이 낳았다. 인터넷 공간이 이상적인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두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강조하는 이상적인 메시지는 물론 중요하겠으나 허울뿐인 결론은 너무나 머나먼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양극화를 주동하며 과격한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더 극단화된 집단들 속에서, 각자 진보라고 믿는 것들을 미친 속도로 쫓으며 파편화된 영토로 존재하며 서로를 적대하기를 부추기는 인물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들은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최소한이나마 존재했던 ‘위선’의 개념조차 지워버리고 위협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상적인 메시지 대신, 이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끔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방해하길 제안한다. 우리는 결국 다시 정치와 사회와 인터넷 공간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적대에 목소리에 맞춰 약자를 보호하고 연대할 것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1)임화섭, [美대선 D-1] 미국심리학회 "미국민 10명중 7명 '대선 스트레스'", 연합뉴스, 2024.11.04.
2)오미영, (2011), 인터넷 여론과 소통의 집단 극화(極化), 현상과 인식, 114호, 39-58p
3)강준만, (2015),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갈갈이 찢어지는가?_사이버발칸화 외, 인물과 사상, 201호, 37-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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