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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주원 ]


하라 케이이치. (2001).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9기: 어른 제국의 역습. 일본. 

과거에 잠긴 신형만, 지금-여기로 불러세운 짱구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은 짱구로 대표되는 자녀 세대가 과거 어린 시절에 영영 빠질 위기에 처한 부모 세대를 무사히 현재로 구출하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부모 세대, 즉 어른들은 20세기 박물관에 조성된 추억의 마을에서 ‘추억의 냄새’를 맡고 현재에 대한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 그들의 자녀, 직업,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마저도. 결국 어린이가 되어버린 짱구의 아빠 신형만은 자신의 부모를 쫓아가는 환상 속에 잠기고, 짱구는 그런 아빠를 뒤쫓는다. 짱구는 “너희 부모는 옛날 냄새를 맡고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라는 20세기 박물관장의 말을 기억하고, ‘반대로 현재의 냄새를 맡으면 현재로 돌아오지 않을까?’하고 떠올린다. 신형만은 지독한 자신의 발 냄새를 맡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생을 회상한 끝에 원래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짱구를 품에 안아준다. 



과거에 잠기도록 만드는 트라우마 기억


누구나 살면서 때로는 과거의 기억에 푹 잠길 때가 있다. 그런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동적으로 그 기억이 떠오른다면 어떨까? 어떤 경우는 짱구의 아빠처럼 평생 머무르고 싶은 추억이 가득한 기억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는 트라우마 경험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침투되는 괴로운 기억일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적절한 정도의 회상을 넘어, 마치 과거에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조절이 어려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라우마 기억은 큰 위험에 압도되었던 경험이기 때문에 그 당시 싸우거나 도망치기보다 죽은 척, 얼어버리게끔 대처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충격적인 경험은 자기 자신, 시간, 주위 환경에 대한 인식을 조각조각 단절하게끔 만든다. 따라서 이런 기억 조각들은 다른 기억과 달리 하나의 흐름으로 기억 체계에 통합되지 않고, 현재 그 사건이 종료되었음에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재경험할 수 있다. 즉 한 인간의 물리적 상태만 현시점에 존재할 뿐, 과거 트라우마 경험에 완전히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짱구는 못말려>에서 찾은 교훈: 트라우마 기억 다루는 법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이 트라우마 기억을 다루지는 않지만, 짱구의 아빠 신형만 또한 현재 어른의 상태를 잊은 채 어린 시절 과거 상태에 완전히 몰입하여 재경험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짱구가 ‘아빠 발 냄새’를 이용하여 신형만이 현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운 사실이다. ‘아빠 발 냄새’는 20세기 어린 시절이 아니라, 현재 신형만 자신의 생생한 감각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때-거기로부터 지금-여기로 돌아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 냄새’처럼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방법은 좋은 향이 나는 핸드크림 혹은 향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도포 하는 순간 후각을 통해 향을 경험하면서 침투하는 기억으로부터 현재 상태로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라우마 기억을 다루기 위해서는 과거와 똑같이 경험하는 게 아닌, 현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도록 전환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향수나 핸드크림이 없는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때 자신의 신체 감각을 자원으로 있는 그대로 활용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네 가지 방법은 중심부 정렬(core alignment), 센터링(centering), 그라운딩(grounding), 호흡(breathing)이다. 


중심부 정렬은 바른 자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트라우마 재경험으로 인해 경직되고 구부러진 몸을 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센터링은 한 손을 가슴에 두고 다른 한 손을 아랫배에 둔 채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현실감을 잃어버릴 것 같을 때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그라운딩은 지면에 두 발을 접지하는 것으로, 현재 자신을 지지하는 굳건한 땅과의 연결감을 느끼고 다리와 발의 감각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준다. 호흡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자신의 호흡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스스로 호흡 속도를 조절하여 각성 수준도 함께 조절하도록 도와준다.



기사를 마치며


히로시(신형만)의 회상은 여러 편의 짱구 극장판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신형만이 어린 시절 과거도 행복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현재 또한 소중하다며 20세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기 때문이다. 그가 ‘발 냄새’라는 후각 경험을 통해 무사히 현재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신체 감각을 통해 시선을 전환한다면 현재에 서서 트라우마 기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중심부 정렬, 센터링, 그라운딩, 호흡을 소개하였다.




참고문헌

1) Pat Ogden, Janina Fisher. (2021). 감각운동심리치료: 트라우마와 애착을 위한 치료 개입.(이승호 역). 하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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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2-05 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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