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한국심리학신문=신경민 ]
'점화 효과(priming effect)'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점화 효과란 먼저 제시된 정보(prime)에 의해 나중에 제시된 정보(target)를 떠올리거나 해석하는 데 영향을 받는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수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후 대통령의 전반적인 성과를 평가하라고 했을 때, 수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대통령의 성과를 특히 경제적 분야에 기반해 평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입'을 주제로 한 이전의 과제(prime)가 이후 대통령의 성과를 평가하는 과제(target)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점화 효과는 개인이 어떠한 인지적 과제를 수행할 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를 모두 떠올리려고 하거나 편향되지 않은 표본을 찾기보다는 주어진 과제와 관련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떠올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를 실생활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카콜라가 있다. 우리 모두 TV를 시청하며 한 번은 봤을 법한 코카콜라의 광고는 뉴스 시간대에는 나오지 않는다. 뉴스를 통해 부정적인 사건 사고를 접한 시청자들이 뉴스 직후에 코카콜라 광고를 시청했을 때 제품 또한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이러한 점화 효과의 영향이 아주 쉽게, 그렇지만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설문 조사'다.
문항 순서에 따라 설문의 결과가 달라진다
다음 설문에 0점~10점으로 응답해보자.
[설문 1]
1. 연인과 데이트 할 때 얼마나 행복한가요?
2. 당신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설문 2]
당신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연인과 데이트 할 때 얼마나 행복한가요?
문항의 순서만 다를 뿐인데, 사람들은 이 두 설문에 다르게 응답했다.
<설문 1>과 같이 삶에 대한 전반적인 행복을 묻는 포괄적인 문항 전에 연인과의 데이트처럼 사소하고 구체적인 문항이 먼저 제시된 경우, <설문 2>와 같이 포괄적인 문항이 먼저 제시된 경우보다 두 문항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 간 상관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난 것이다. 문항에서 '데이트에서의 행복'을 '연인과의 데이트 횟수'로 바꾼 경우에도 결과는 같았다.
이러한 문항 순서에 따른 응답의 차이는 바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점화 효과에 의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설문에 참여할 때, 설문의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사전에 정리하거나 준비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질문의 순서가 설문의 응답에 중요한 맥락이 될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하는 인지 과정에서 응답자들이 설문 문항마다 새로운 기억들을 찾아내고 구체적인 정보를 탐색하기는 쉽지 않고, 그래서 이전에 답한 응답들이 이후 문항의 새로운 정보로 활용되며 정보탐색 과정의 생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설문에서 세부적인 질문이 제시되면, 해당 질문과 관련된 기억들이 활성화되며 관련 정보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이후 포괄적인 질문이 제시되었을 때 또 새로운 정보들을 찾기보다는 이전에 활성화된 세부 영역 정보들을 활용하여 응답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응답 간 상관이 높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의도할 수도, 의도될 수도 있다
점화 효과에 따라 설문 응답에 차이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러한 결과를 왜곡되었다거나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문항의 순서 변화에 따라 설문지의 맥락과 이에 따른 응답자들의 인지 과정이 달라지는 것일 뿐 잘못된 응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설문 조사가 단순히 문항의 순서만 바꿈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의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반적인 삶의 행복도를 높게 평가하는 설문 조사 결과를 얻고 싶다면 먼저 '지난 한 달간 떠올렸던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나열해보세요.'와 같이 긍정적인 기억을 활성화할 수 있는 문항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삶의 행복도를 낮게 평가하는 결과를 얻고 싶다면 '지난 한 달간 떠올렸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나열해보세요.'와 같은 문항을 먼저 제시하면 된다.
우리는 설문 조사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도 있고, 설문 조사의 응답자가 될 수도 있다. 설문을 만드는 주체라면, 객관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설문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이러한 점화 효과의 영향을 인식하고 주의해야 한다.
설문에 참여하는 응답자의 입장이라면,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참여하는 설문 조사 하나하나에 고도의 인지적 사고 과정을 거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응답이 이렇게 쉽게 의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설문 조사의 참여와 결과 분석에 조금 더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안명식, 한인수, 오홍석. (2016). 직무만족 조사에서의 질문 순서 및 질문 의도 효과에 관한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6(7), 423-430.
(2) 이슬기, 금현섭. (2022). 설문조사에 있어서 순서효과에 대한 연구. 한국조사연구학회, 23(2), 99-130.
(3) 이유재. (2004.07.09.) [칼럼] 점화효과. 주간경향. https://url.kr/8uhzdd.
(4) Strack, F., Martin, L. L., & Schwarz, N. (1988). Priming and communication: Social determinants of information use in judgments of life satisfaction.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18(5), 42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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