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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나만의 상담사 -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과 느슨한 연결의 강점
  • 기사등록 2024-12-27 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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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정은 ]



유독 힘들었던 날, 귀갓길에 무심코 잡아 탄 택시 안에서 나는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기사님께 쏟아냈다. 당신도 필자와 같은 경험이 있는가? 다시 보지 않을 사람, 다시 볼 수 없는 사람, 그렇기에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을 사람일텐데, 그 날의 나는 왜 그랬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가? 그 답은 심리학 속에 있다. 바로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효과’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효과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효과‘란 심리학자 직 루빈이 제시한 개념으로, 친밀한 상대보다 낯선 상대에게 평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개인적인 비밀이나 고민을 더 쉽게 털어놓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즉, 극단적으로 낯선 곳에서 극단적인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깝지도 않은 사람에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1. 낯설기에 안전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 친구, 동료 등 우리는 항상 타인에게 둘러쌓여 살아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적 체면이나 지위 등을 고려하게 되는데, 이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배신이다. 친밀하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가 약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낯선 사람은 당연히 나와의 사회적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행동에서 비롯될 부정적 결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이 순간 잠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다, 기차에서 내리고 난 후 돌아서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 될 뿐이다.

 

2. 낯설기에 부담 없다!

친밀하다는 것은 유대관계의 형성, 애착의 형성을 의미한다. 애착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부담을 주고 싶지 않거나, 너무 친밀하기에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낯선 상대에게는 어떠한 형태의 애착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상, 방금 본 사람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무겁고 힘겨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는 이 순간과 이 공간에서만 나의 세계를 공유할 뿐이기에 나의 세계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친밀한 상대보다 부담 없이 대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3. 낯설기에 재미있다!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겨지는 이유는 낯선 곳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새로움 때문일 것이다. 새로움은 곧 자극으로 연결 지어진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만약 기차 옆자리에 탄 모르는 사람이 당신에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엄청난 사랑 이야기를 떠들어댄다면, 당신은 마치 로맨스 영화를 보듯 그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낯선 타인의 인생을 잠시 경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재미일 테니 말이다. 




느슨한 연결의 강점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에게는 안전과 위로, 재미 뿐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기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 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치도 못했던 해결책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 흐려져 버린 본질을 완전한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유레카!" 같은 발견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느슨한 연결의 강점'이라는 사회학적 현상에 해당한다.

 

'느슨한 연결의 강점'은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레노베타가 제시한 개념이다. 아주 가까운 관계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가 신선하고 중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인데, 실제로 그는 직업찾기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취직한 회사의 정보를 얻은 경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이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어쩌다 만난 사람, 혹은 그보다 조금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제공한 정보가 오히려 더욱 신선하고 중요한 정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친구나 가족, 애인과 같은 끈끈한 연결의 사람은 구직자가 이미 가진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직장을 얻는 데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기차의 종착역


같이 살 때는 매일 싸웠던 누군가와 떨어져 살게 된 후 오히려 더욱 친밀해진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함께 보내는 시간과 갈등은 비례한다. 공유하는 시간이 많다면 당연히 갈등도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정서적 욕구를 해소할 존재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족, 친구, 애인 등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시적인 관계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라는 것을 인지함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과 부담은 곧 갈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차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내리고, 또 태운다. 우리가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그 끝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차에서 만나 곧 헤어질 이방인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 속을 묵묵히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다. 지금도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은 언제든 당신만의 무너지지 않는 요새가, 무엇에 맞서도 든든한 아군일 준비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김왕표 기자, '느슨한 연결의 강점'을 알자, 경인일보, 2009.10.07

https://www.kyeongin.com/article/481418

2) 우경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낯선 곳에서 만나는 친밀감,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 정신의학신문, 202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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