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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지난 2024년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본 글을 쓰는 지금 탄핵 정국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과정은 시민들의 기대보다 지지부진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미디어에서 탄핵 정국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았다. 탄핵을 향한 민의를 보여주기 위해 각자의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으로 나선 시민과 계엄령 당시 계엄 해제 표결에 앞장섰던 국회의원들을 조명하며 민주주의의 힘을 강조하는 듯한 보도가 주였지만,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일부 시민들과 극우 스피커들을 다른 한 편으로 다루는 보도도 볼 수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가 지향하는 가치라고 했을 때 으레 떠오르는 건 ‘공정성’과 ‘균형’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과 균형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과연 무엇이 공정하냐를 놓고 논박을 벌이는 게 주요 사회 이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예를 들면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 같은 것들이다. 기계적 중립이란 모든 입장을 동일한 무게로 다루려는 태도를 말한다. 양비론은 “양쪽 모두 잘못이 있으니 비슷하다”라는 결론으로 쉽게 치우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는 표면적으로는 공정해보이나 실제로는 진실을 왜곡시키거나 약자의 소리를 지운다는 점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기계적 중립과 편승 효과


기계적 중립의 가장 큰 문제는 진실과 거짓을 동일선상에 놓는 데 있다. 이를테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연구와 음모론을 동등하게 다루는 보도가 그 예시다. 이는 정보를 접하는 대중이 사실을 오해하기 쉽게끔 만든다. 소수는 다수를 뒤흔들 수 있다. 어떤 환경이든 간에 한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거나 음모론을 강경하게 믿는 순수주의자들은 1퍼센트라는 얘기가 있다. 그런 1퍼센트의 목소리를 마치 50 대 50인 것처럼 확대해 전달한다면 다수는 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는 본디 경제 용어로,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다수가 많이 지지하는 더욱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가 소수의 극우적 목소리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마치 두 개의 진영이 있는 양 보도할 경우, 이를 접한 대중은 강경한 의견 또한 다수의 견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동조하도록 만들고, 거짓된 정보가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나 비논리적인 결론도 쉽게 수용되며, 사회적으로 왜곡된 합의가 형성되기 쉽다.



왜곡의 지속, 허위합의 효과


사회적으로 한 번 왜곡된 합의가 생기면 그 인식을 수정하고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보통 타인도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를 ‘허위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하는데, 이 경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 합치 정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행동이나 신념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효과는 집단 여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정도로 강하다. 따라서 왜곡된 정보를 사실로 인지하고 대체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반응을 본다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반응에 대해서 부적절하고 일탈적인 것이라고 결론내리기 쉽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회는 올바른 상태로 나아가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와 갈등을 바로잡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된다. 



무사유의 시대


인간은 모방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한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적응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공중이라는 집단적 일체감을 갖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공론이 자꾸만 왜곡과 퇴보를 거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금이 사유하지 않기 가장 편한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주류 의견처럼 보이는 것을 사유 없이 내 의견으로 채택하고 동조하기 쉬운 시대가 아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모든 의견을 동일한 무게로 다루는 것이 공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통 과정에서 불균형한 권력 구조나 기존의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약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정보의 검증을 거쳐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고문헌

1) 강준만, 왜 1퍼센트의 사람들이 전체 조직을 뒤흔들 수 있는가? _1퍼센트의 법칙 외, 인물과사상 2014년 7월호(통권 195호), 2014, pp. 35-63

2) 장승진, 송진미, 허위합의(False Consensus) 효과와 쟁점투표, 한국정당학회보 제16권 제3호(통권 제37호), 2017, pp. 7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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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07 13: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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