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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2024년 연말은 여태 그 어떤 연말보다도 충격적인 일이 많은 때였다. 계엄령 선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주는 일이 짧은 기간 사이에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를 우리는 ‘사회적 참사’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참사’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참사란 사건이나 피해가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그 부재, 사회적 압력 등 사회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대규모 재난이나 사고,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폭력적 사건 등의 발생은 일상의 안정을 무너뜨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인해 깊은 우울감과 상실감을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참사는 사건사고나 재난을 겪은 당사자와 주변인들은 물론, 단순히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한 대다수의 대중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참사와 우울


사회적 참사는 공동체 구성원의 정신적 고통을 초래한다. 사회적 참사는 불가항력적이거나 구조적인 취약성에 의해 갑작스레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공동체 구성원의 반응 역시 급작스럽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집단적으로 겪은 이러한 고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일으킬 수 있다. PTSD라는 단어는 최근 인터넷 밈처럼 사용되어 일상용어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말이 되었지만 사실 PTSD는 매우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해서 그것을 떠올리거나 꿈을 꾸며 고통을 겪는 증상으로,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증상이다.

 

간접 체험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하는 일반 대중들도 심리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사고 장면이나 유족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일인 듯 동일시를 하게 된다. 특히 과거에 비슷한 사고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공포를 재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사회적인 불안과 슬픔은 미디어를 통해 또 확산되어 국가적인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재난이 사회 전체의 심리적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는 법


사회적 참사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원인을 규명하고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들은 다양한 기억의 이야기들을 불러오게 하기 마련이다. 참사로 겪은 개개인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지켜보고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안정이 깨졌던 자신의 일상을 다시 잘 영위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치유 과정을 직시하려면 개인적 차원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먼저 개인의 정서 회복을 위해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덴마크 소설가 이사크 디네센(Isak Dinesen)은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를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자신이 겪었던 상처와 고통을 재배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평정심을 되찾게 만든다.

 

또한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난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 일상의 안정이 깨지면서 불규칙적인 생활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의 촘촘한 루틴으로 이루어진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수면 패턴만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규칙한 수면은 우울증 발병 위험을 높이는 데 반해 규칙적인 수면은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자원봉사나 지역 사회 지원 활동 등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비슷한 정서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연대는 고립감과 무기력을 없애고 참여 자체가 정서적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일상을 영위해야 투쟁도 계속된다


우리 사회는 여태 참사가 발생한 뒤 트라우마와 슬픔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사회적 고통을 수습해왔다. 앞선 참사에서 원인 규명, 애도나 추모 행사 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트라우마를 개인적 차원으로만 남겨두거나 새로운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참사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슬픔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발생한 사회적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하지 않게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그런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잘 이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고문헌

1)Jeronimus, B.F., et al. "Acute stress responses after indirect exposure to the MH17 airplane crash,"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 2018.

2)Kim, S.W., & Kim, J.M. "The Impact of Community Disaster Trauma: A Focus on Emerging Research of PTSD and Other Mental Health Outcomes," Chonnam Medical Journal, 2020.

3)이희은, 2023, “사회적 참사와 타인의 죽음”, 문화연구 제 11권 1호, 23-41p

4)김병수, 2014,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는 법」, 『월간 인물과 사상』, 제 194호,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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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20 07: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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