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린
[한국심리학신문=정혜린 ]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많은 소방관이 출동했고, 문화재 관련 직원들도 와서 머리를 싸맸다. 하지만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 숭례문 2층을 분해하기로 했다. 지붕은 꽁꽁 얼어 있었고, 경사가 약 60도 정도로 급했기 때문에 소방관들은 난항을 겪었다. 진압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결국 소방관들은 철수하게 되었다. 숭례문에 불이 붙은 지 대략 5시간 이후 숭례문은 처참하게 붕괴하였다. 그제야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방화 범죄이다. 범인이 고의로 불을 지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방화 범죄
방화란 고의로 화재를 일으켜서 다른 사람에게 인적, 물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방화 범죄는 쉽게 행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인명 피해나 재산 손실 등은 매우 크다. 방화가 일어난 현장에서는 불로 인해 타버리기 때문에 범죄와 관련된 증거나 흔적을 찾아내기 매우 어렵다. 방화 현장에서 발견되는 특징과 증거는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방화 대상의 선택, 장소의 특징, 또는 발생 시간대 등을 통해 범죄자에 대해 유추할 수 있다. 촉진제의 사용 유무, 점화장치의 중류, 침입 여부, 다른 범죄의 흔적, 혹은 인위적인 흔적 등은 방화 범죄를 의심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정신장애로 분류한 방화 범죄
방화 범죄를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그중에서 특히 정신장애에 의한 유형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데,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방화가 정신질환 혹은 심각한 성격장애를 보유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김경옥과 이수정의 2009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화범죄자 중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21.3%이다. 방화를 저지르는 사람 대부분이 정신질환 혹은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 전통적인 관점과는 일맥상통하지 않는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방화범죄자 중 34.6%가 분노를, 18.9%는 열등감을 호소했다고 밝혔다.이들이 실제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그렇다면 정신장애를 가진 범죄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정신장애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조현병이 있다. 조현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피해망상에 의한 보복을 위한 방화를 저지르거나, 환청을 들어 방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불을 지르라.”라는 소리가 자꾸 맴도는 경우 등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연쇄적인 방화로 이어질 수도 있고, 공공장소에서 범죄를 일으키거나 피해에 대한 자각 없이 방화를 저질러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우울증에 의한 방화 범죄도 있다. 우울증의 경우는 방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 실제로 대구 지하철 방화범은 기분부전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분부전증은 경미한 정도의 우울감이 지속되는 것으로, 2년 이상 우울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으며, 망상 또는 환각 같은 현상에서는 우울증 진단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우울증으로 인한 방화 범죄의 경우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속하게 검거되는 편이기 때문에 후에 발생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방화를 통해 이상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방화를 일으키기 전에는 긴장감과 각성을 느끼지만, 이후에는 이러한 느낌이 줄어들고 쾌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 방화를 생각하고 거기에 빠져있다. 스트레스 해소의 방식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화가 나면 방화할 생각을 쉽게 한다. 대상은 무작위로 선택하고, 의식한 동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행동 요인으로 분류한 방화 범죄
범죄자 행동 요인을 기준으로 분류한 유형도 있다. 공격 대상과 동기 범주를 이용해 총 4가지로 나눈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싸워 발생한 경우, 도구적 사람 유형에 해당한다. 이들 간에는 위협과 논쟁 등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범죄에 일관된 목적이 없는 유형을 도구적 사물 유형이라고 한다. 청소년이 장난으로 방화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방화 범죄를 저지르는 표현적 사람 유형이 있다. 이들은 타인의 관심을 끌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마지막 유형은 표현적 사물이다. 이들은 앞의 3가지 유형과는 다르게 방화 범죄 이후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 남아서 상황을 보는 경향이 있다. 범행 대상으로는 불특정 대상물을 선정하고, 자신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복합적인 행동을 한다.
숭례문 방화의 범인은 표현적 사람 유형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의 집이 재개발 대상이 되어 철거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값에 불만족하여, 건설회사에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담아 방화 범죄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지하철도 범죄 대상 후보에 있었으나, 인명피해가 클 위험이 있었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국보인 숭례문을 불태우면 자신의 피해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이 유형의 모습을 보인다. 방화는 무지막지한 물질적 손실과 인명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범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1) 이수정. (2024). 최신범죄심리학(5판).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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