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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노상현 ]



남들에게 '베풀기' 위해서




난 현재 장애인 특수 학교에서 사회복무를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맡는 내 주 업무는 바로 하교 버스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하차를 도와주는 보조원 역할이다. 


어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세 명의 아이들이 내게 밝게 인사를 하며 우리 버스에 올라탔다.


한 명은 중학교 3학년 남자아이, 한 명은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한 명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손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내게 이렇게 밝게 인사를 해주니, 오전 근무를 하며 느꼈던 피곤함이 싹 다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와중에도, 이 친구들은 말썽 하나 안 피우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이 벨트를 매는 걸 도와주는 등,


"도대체 이 친구들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하고 얌전한 친구들이었다.


한 번은 중학교 3학년 친구가 장난감을 떨어뜨렸길래 가서 다시 올려줬더니, 


내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같이 탄 동생들이 벨트는 잘 매고 있는지, 말썽은 안 피우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이 친구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길래 이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지?", "중학교 3학년이 어떻게 저런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 친구들이 내릴 때쯤, 기사님은 이 친구들에게 "지금처럼 바르게 그리고 밝게만 자라주면 된다."라고 말하며 버스 문을 열어주었다.


이에 "감사합니다 기사님, 선생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말하며 동시에 한곳으로 뛰어가는 이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난 물었다.


"기사님, 저 친구들 왜 이렇게 착해요? 저 아이들 다 형제 맞죠?"


"아니... 고아야."


이 말을 듣고, 뭔가 가슴이 쿵 하고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서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버스에서 돌아가는 내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는 건, 좋은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는 건


결국엔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닐까.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다시 한번,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말 깊이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기에 


우리가 그래도 간간이 세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난 진심으로 이 따뜻함의 크기를 키우는 데에 이바지하고 싶다. 


꼭 뭔가를 갖추고 돕는 것이 아닌, 지금 내 현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베풀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현재 내가 베풀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그것들을 차근차근 실천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성장하면서 내 도움의 크기와 정도도 같이 성장하는, 그런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난 앞으로 더 치열하게 그리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욱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


그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남들에게 "베풀기" 위해서.




'20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어제 메모를 정리하다가 20살 때 썼던 글을 발견했다.


내 기억 속 "20살의 나"는 이 세상에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찬 "이상주의자"였달까.


그런데, "현재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치를 낮추고 있다.


그리고, 뭘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앞으로 다 잘 될 거라고 믿는, 즉 "야망만 있는 게으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나"를 나 자신에게 정확히 각인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난 "미래의 내"가 위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위 글이 상당히 이상주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20대에라도 실컷 이상주의자로 살아보고 싶다.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기에는 아직 억울하다.


내 마음대로 꿈꿔보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보고 싶다.


남 참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현재 난 이룬 게 많이 없고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난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하고, 많이 깨져도 봐야 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정확한 목표를 세워 열정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난 나를 믿는다.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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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21 17:38:52
  • 수정 2025-01-21 17: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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