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한국심리학신문=김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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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전편]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한 ‘인간 혐오 메커니즘’이, 실제 인간관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후편]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의 심리적 건강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더 깊이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개인의 정신 건강과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직면한 인간관계의 문제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물질’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해한 ‘이물질’이나 외부의 적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무해하고 자신의 아군이 되어줄 존재, 유익한 존재와는 공존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존해야 할 존재까지 공격하고 제거하려 드는 순간에 그 행위를 멈출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 혐오 메커니즘’ 반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물질’이 아닌 존재, 즉 스스로와 가족에게 공격을 억제하는 체계를 ‘면역관용’이라 말한다. 면역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유년기에 접촉한 물질에 대해서는 ‘이물질’로 간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일부로 받아들여, 거부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존했던 존재는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편, 일단 면역 체계가 발달한 뒤에 알게 된 존재는 타인으로 인식하게 되어 공격 및 제거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마음의 면역에도 이와 같은 시스템이 존재하며, 그것을 ‘마음의 면역관용’이라 일컫는다.
타인을 전부 ‘이물질’로 여기고 철저히 공격하고 제거하려 든다면, 그 사람의 사회생활과 사회적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인간의 신체가 영양과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마음 역시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애정을 필요로 한다. 유해한 존재는 공격, 제거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생물이다. 사회생활에서 대립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존재와 의지가 되어주는 존재에게 마음의 ‘면역관용’을 발휘하여 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애착’이라 일컫는 이것은, 유년기에 항상 옆에서 보살핌을 주며 애정을 쏟아준 존재에게 생물학적으로 형성하는 연결 고리로서, 이로 인해 영원한 사랑의 감정과 신뢰가 생겨난다. 타인을 스스로와 연결된 존재로 받아들여, 때로는 안식처나 보금자리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기능도 한다.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특정한 존재와의 사이에서 형성된 ‘애착’이란, 인간관계의 토대가 되며 타인과 친밀하고 원활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반면에, 유년기에 주 양육자와의 사이에서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하면 타인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어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양육자와의 애착이 안정된 아이 쪽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쉬울 뿐만 아니라, 유해한 존재를 제거하는 능력 또한 높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필요한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로운 인간이 접근할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다. 이렇게 애착은 마음의 면역관용과 몹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자녀 혹은 파트너에 대한 애정과 같이, 특정한 존재를 향한 지속적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인한 ‘애착’의 형성 때문이다. 우선 애착이 형성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상대방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이에게, 커플이 서로에게 헌신하고 전념하는 경우에도 생물학적인 구조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정신 작용이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작용은 양쪽 간의 애정 자체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정신 작용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심리적 동일시’와 ‘자기애 전이’이다.
‘면역’이란 자신이 아닌 존재를 배제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스스로와 동일시되는 것은 ‘이물질’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아버지’가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정작 미숙한 스스로를 질책해 주는 강하고 올바른 존재라고 인지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동일시'이다. 오히려 아버지를 자신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그 행위를 따라 하면서 증오라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작용이 더욱 진화하게 되면, ‘자기애 전이’로 이어진다.
‘자기애 전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거울 전이(mirror transference)’로, 상대방을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처럼 느끼고 ‘나와 같다’고 특별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는 곧 자신이므로, 배제할 필요가 없다. 단지 원하는 만큼 마음껏 찬양하고, 빠져들면 될 뿐이다.
아무리 애착이 불안정하다고 할지라도, 여자라면 누구나 어머니가 ‘될 수는’ 있다. 또한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는 종종 ‘몽상’에 빠지곤 한다.
혼잣말로 아기에게 말을 건네며 다양한 상상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환상이다. 이때, 아기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이상을 반영한 ‘분신’이 된다. ‘자기애적 맹목’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심리적 면역 작용은, 아기 때문에 떠안게 된 불쾌함이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어머니가 아이의 욕구를 자신의 욕구처럼 여기는 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 것은 아이의 안정된 정서 발달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심각한 애착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 부정을 하게 되면, 아이를 심리적 동일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물질’로 여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동일시를 하더라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불행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일 어머니가 아이를 ‘이물질’로 여기게 되면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하는 계기가 된다. 대개 어머니의 보살핌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신생아 때보다 3~4세 무렵에 아동 학대 비율이 증가하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어머니가 동일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어머니로서는, 이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므로 ‘외면’해 버리게 된다. 그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아이를 ‘이물질’로 간주하여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음의 면역 작용이 붕괴된 후 강한 거부 반응에 이르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한편, 안정된 애착을 가진 성숙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자기애를 전이하지 않는다. 아이와의 동일시가 필요한 시기에는 몰두하지만, 그 필요가 사라진 후에는 아이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받아들인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성격이 드러나더라도 관용을 유지하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성인의 인간관계에서도 ‘자기애 전이’와 ‘심리적 동일시’는 마음의 면역 작용을 촉발하여 사람들 사이에 일시적인 친밀감을 만들어주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동상이몽’ 에 불과하다. 꿈이나 환상이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갈등이나 문제로 이어지고, 끝내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
성인의 인간관계에서 ‘자기애 전이’나 ‘심리적 동일시’로 인해 발생하는 ‘자기애적 맹목 현상’은 주로 ‘연인 관계’에서 나타난다. 서로 빠져들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시점에서 두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느낀다. 서로의 존재가 희망이나 꿈을 향해 행동하는 원동력이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한다.
소중한 가치와 관심, 감정을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라고 느낄 때, 상대방은 자신에게 있어 ‘일심동체’가 되곤 한다. 그렇기에 둘 사이에 수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공통점에 더 관심을 쏟게 되어 상대를 ‘이물질’로 인식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더는 공유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오면, ‘자기애 전이’나 ‘심리적 동일시’는 마침내 그 위력을 잃고 만다. 그저 차이점만이 더욱 부각되어 보일 뿐이다. 그러다가 끝내 불쾌하고 견디기조차 힘든 ‘이물질’로서 인식하게 되는 순간, 이전까지는 전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혐오감과 반발심이 생기고, 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파트너에 대한 ‘인간 혐오 메커니즘’이 급격히 ‘함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서로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사사건건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가 이 수준에까지 이르렀을 때, 두 연인은 다음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차가운 침묵으로 견디며 깊은 관계를 피할 것인지, 아니면 영혼 없는 반응으로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결국 헤어지거나 거리를 두고 지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는 믿으면 안 될 상대, 혹은 위험한 상대와 친해지거나 호의를 베풀었다가 큰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해당 면역 체계는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미리 거부 반응을 유도하고 접근을 차단시켜 주는 기능을 하곤 한다.
결국 지금까지 다룬 이 ‘인간 혐오 메커니즘’은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체의 면역 반응'이 육체의 건강 및 생존을 지키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처럼, '마음의 면역 반응'은 정신의 자유와 자립을 보호하며,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체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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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오카다 다카시. (2023).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동양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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