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
[한국심리학신문=신동진 ]
친구가 연인과의 지독한 연애를 끝내고서 ‘이제 그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라며 새출발을 다짐하는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친구로서 우리는 잘한 결정이라며 격려해 주고 분명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얘기 해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다시 만나기로 했어’라고 얘기하는 상황 또한 많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에 왜 헤어졌는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기억을 상기해 보라고 해도 조언을 듣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시 반복될 고통이 왜 본인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지 미스터리이다. 정신과의사가 얘기한다고 해도 그들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두 달 다시 만났다가 또 헤어진다. 이쯤 되면 고통을 기억 못 하는 듯한 친구의 기억력이 걱정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헤어진 이후에 재결합하게 될까?
우리 기억은 아주 주관적이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인 일화 기억이 생성되는 과정에는 감정이 섞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인 일화 기억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어릴 때 유난히 커 보이던 선생님을 성인이 되고 재회하면 생각보다 작아 보이는 현상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억은 인출할 때마다 바뀌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같은 얘기를 반복할수록 MSG가 더 첨가된다. 심한 경우 결국에는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또 다른 재밌는 특징이 있다. 기억은 전체의 과정을 기억하지 않고 정점의 기억과 종점의 기억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어떤 연애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주 좋았던 장면, 아주 싫었던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어떻게 헤어졌는지이다. 자신의 이전 연애를 기억해 보면 쉽게 증명이 가능하다. 여행을 같이 간 기억, 대차게 싸웠던 기억은 잘 난다. 하지만 일반적인 주중 데이트에 무엇을 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마지막에 어떻게 헤어졌는지, 얼마나 싸우고 헤어졌는지는 뇌리에 박혀있다.
이런 기억의 특성으로 왜 우리가 헤어진 연인과 재결합하는지 대답해 볼 수 있다. 전체 기간 동안 힘들었던 연애라도 헤어지고 나면 아주 좋은 기억 몇 개에 전체 기억이 왜곡되는 것이다. 또 연애의 마지막에 내가 모진 말을 많이 했다면 그것에 대한 기억으로 자책감이 들어 다시 만나게 된다. 따라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과정을 들여봐야 한다.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니라 평소에 어땠는지가 중요하다.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하고 사소한 날에 관계가 어땠는지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당장 어제 헤어진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너 T야?’라는 얘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어짐의 여파가 가라앉고도 전 연인에게 ‘뭐해?’라는 카톡을 보내고 싶다면 위와 같은 얘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스스로 생각했을 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친한 사람 몇 명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나보다 남이 기억의 왜곡에서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두개의 좋은 기억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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