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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다빈 ]


길을 걷다 우연히 맡은 김치찌개 냄새에, 우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따뜻한 김치찌개와 그때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또는 지나가는 사람의 향수 냄새가 옛 연인을, 한여름의 비 내음이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냄새를 맡는다. 길거리의 공기, 음식, 꽃, 그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작은 향기들까지. 우리의 일상은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냄새들이 단순한 '신체적 감각'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후각은 기억과 감정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신비한 힘을 지닌 감각이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때로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과거의 장면을 선명하게 되살린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 특히 우리의 소비와 일상적인 선택에까지 깊숙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향기와 감정의 뇌과학


후각은 우리의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정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변연계로 전달되며, 이에 따라 감정과 과거의 기억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변연계는 기억과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후각은 다른 감각들인 시각이나 청각보다 훨씬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자극한다.


시각과 청각은 정보를 대뇌 피질로 전달한 뒤 해석을 거쳐 기억을 자극하는 반면, 후각은 바로 변연계를 통해 감정과 기억에 깊게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후각을 통해 불러일으킨 기억은 오랫동안 그리고 깊게 각인된다.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에 얽힌 감정까지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프루스트 현상: 향기로 되찾은 감정의 순간들


프루스트 현상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특정한 냄새나 향기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과자에 적신 홍차 향을 맡고,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간, 그때의 감정, 장소를 선명하게 회상한다. 


이 장면은 향기가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묘사한 대표적인 예로, 향기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프루스트 현상이란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향기는 향수(鄕愁)와 깊이 연결돼 있다


심리학자들은 기억을 일화적 기억의미 기억으로 구분한다. 의미 기억은 사실이나 정보와 관련된 기억이다. 예를 들어,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다"와 같은 정보적 기억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일화적 기억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기억으로, 사람이나 장소, 사건과 연결된 생생한 기억들이다. 후자는 감정적인 연결이 강하고, 향기는 주로 일화적 기억을 자극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요리 냄새나 할머니 집에서 느낀 향기는 그 당시의 감정과 사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든다. 향기는 특정 순간이나 사람과 강하게 연관되어, 그 기억을 하나의 정서적 경험으로 완전히 재현하는 역할을 한다. 향기는 단순히 ‘그 냄새가 나네요’가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는 방식으로 우리의 뇌와 깊은 연결을 맺는다.



향기의 힘, 정신적 회복과 인지 능력 향상을 돕는 자연적 대안


향기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치료 도구가 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특정 향기가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를 통해 감정 회복을 돕는다고 한다. 특히 천연 에센셜 오일을 활용한 향기 요법은 뇌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향기가 코점막을 통해 후각 신경을 자극하고, 이 신호가 대뇌변연계로 전달되면, 정신 기능 강화와 진정 및 이완을 유도하여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향기는 우울증 치료 외에도 인지 능력 향상에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2023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뇌 바이오 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60~85세의 실험 대상자들에게 향기 요법을 시행한 결과, 단어 테스트와 청각 언어 테스트에서 인지 기능이 평균 226% 향상되었다. 이는 향기가 기억력과 인지 기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기는 무의식 속에서 우리의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향기의 영향력은 개인적인 치료를 넘어서 소비자 행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의 감각을 자극하여 무의식적으로 구매 욕구를 유도하는 강력한 마케팅 전략이다. 향기는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에 따라 구매 결정을 이끄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달바는 더현대서울, DDP, 아르떼뮤지엄 등에서 자사의 독특한 향기를 배치하여 관람객들에게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향기는 제품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브랜드에 대한 감성적 연결을 만들어 주며, 이를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가수 태연은 콘서트 현장에서 향기를 활용해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후각 설계’를 시도했다. 공연 중 특정 향기를 맡으며 팬들은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공연 후에도 그 향기는 팬들에게 추억처럼 남아,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신비로운 후각의 세계를 찾아서


후각은 아직도 밝혀낼 게 많은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350개 이상의 후각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향이 우리의 감정과 심리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유전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최근에는 코뿐만 아니라 피부나 폐에서도 후각 수용체가 발견되었으며, 그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후각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넘어, 뇌와 몸의 복잡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비밀을 푸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향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단순한 냄새를 넘어, 우리의 감정, 기억,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후각이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치료, 마케팅, 소비 심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향기는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참고 문헌

1) 이수빈 and 손원준. (2015). 후각적 감성과 시각적 감성의 연상관계: 향수의 향기와 패키지의 공감각적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47, 165-174.

2) 김미경. (2022). 은은한 향기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이유. 생글생글

3) 공희주, 김계하. (2022). 천연 에센셜 오일을 이용한 향기 요법이 성인의 뇌 활성도에 미치는 효과.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 23(3), 395-402. 10.5762/KAIS.2022.23.3.395

4) Robins, W. J. L. The science and art of aromatherapy, J Holistic Nurs, 17(1), 5-17.1999

5) 김영리. (2025). "공연장에 냅다 뿌린다"…혜리 소름 돋은 태연 '향기 마케팅' [건강!톡].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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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24 10: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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