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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 사람들과의 대화, 발표, 연설, 혹은 우리가 픽션이라고 부르는 소설 속의 한 줄이나 영화의 한 장면까지 모두 통틀어 우리는 이야기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이야기를 창작하고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그것들이 가진 힘 사이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는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픽션 감상의 가치를 지친 현실을 잠시 잊은 채 소위 ‘힐링’할 수 있는 것에 두는 사람도 많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현실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고 별도로 존재하는 세계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고 스스로 완결적인 세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픽션을 감상하고 나서 얻은 감정은 현실의 것이라고 인정한다.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를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한 감정을 움직이고 때로는 삶의 방향마저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비밀과 감정 등을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다.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는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상인의 문>(2006)이 잘 보여준다.

 


이야기를 통한 치유와 회복, [더 폴: 오디어스와 상인의 문]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상인의 문>(2006)은 타셈 싱 감독의 작품으로, cg를 한 군데도 사용하지 않고 24개국을 돌면서 찍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특히 돋보인다. 영화의 시작은 1920년 미국 할리우드의 한 병원이다. 영화를 촬영하다 떨어져 다리를 다친 스턴트맨 로이와 오렌지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꼬마 알렉산드리아는 친구가 된다. 어린 친구를 위해 로이는 다섯 영웅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흐려지게 된다.

 

영화 <더 폴> 스틸컷.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유가 스스로를 해하기 위해서임이 드러난다. 로이는 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절망을 담아낸다.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창조하며 죽으려는 이유를 되짚어보는 그의 상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우울증과 유사하다. 그러나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와 관계를 맺으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로이가 창조한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와 로이의 관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고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강조한다. 

 

로이는 분명 죽음을 선택하려 했지만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와의 상호작용은 로이에게 다시금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며 관계 중심 치료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타인의 공감’과 ‘치유적 관계’를 형성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순수한 믿음과 이야기에 대한 열정은 로이의 절망을 극복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고, 그가 자신의 고통과 직면하고 이를 극복할 단서를 제공한다.

 

이야기를 주로 수용하는 쪽이었던 알렉산드리아에게도 이야기의 힘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라는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미지적 재구성을 한 것으로 표현된다. 알렉산드리아는 단순히 이야기의 수용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함께 구성하고 절망에 빠진 로이의 결말을 바꾸는 데까지 일조하게 된다. 후에 그는 로이와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로이 같은 스턴트맨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 한 사건으로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 그리고 이야기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상인의 문>은 아름다운 비주얼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럼에도 픽션을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가치가 있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야기는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도구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공감과 이해는 심리적인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은 언제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 영화는 영화 산업의 이면에서 노력하는, 꼭 필요한 모든 이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면서 이야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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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2-03 11: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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