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원
[한국심리학신문=이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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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에 첫 지원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동안 심리학을 특정한 대외활동은 잘 보기가 어려웠는데, 그러던 와중 운좋게도 한국심리학신문 기자단 활동을 접했다. 심리학 관련 기사를 작성하고 읽을 수 있어 의미가 깊다고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자단에 합격하고 싶은 동기가 매우 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지원할 때의 호기로움과 달리, 기자단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기사를 생산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점을 경험하였다. 기자단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점점 희미해질 무렵, 다른 심꾸미의 기사를 읽는 활동이 큰 힘이 되었다. 평소 궁금해했던 주제를 다룬 기사들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을 느꼈고, 읽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와 관심사가 같은 기사로부터 다른 심꾸미와 함께 활동하는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별로 접점이 없는 주제의 기사를 읽었을 때,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경험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상담심리학의 관점에서 독자를 고려한, 좋은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이는 심리학과 관련된 지식을 단순히 지시적으로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며, 독자가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심리적 어려움을 쉽게 재단하거나, 해결책을 단언하는 말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으며 기자와 함께하는 느낌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의 경험이 떠오르더라도 이를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안정감이 자리하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다른 심꾸미의 기사를 읽으며 느낀 점이 있었다. 내가 자기 이해를 원할 때 그 기사는 자기 이해를 위한 목적으로 읽게 되었지만, 정보 습득을 원할 때 그 기사는 정보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이처럼 같은 글도 결국 독자의 욕구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사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은 독자의 몫으로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이편이 더 기사에 대한 독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허용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내가 목표로 한 것은 독자에게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기 이해를 촉진하는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기자단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면, 본래 기사 작성의 목적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따라서 이러한 느낀 점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고픈 마음이 든다.
처음의 다짐처럼 기사가 수월하게 작성되지 않았고,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기자단 활동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심리학신문사에 계신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기자 활동 과정을 묵묵히 지지해주시며, 관심을 기울여주셨던 매 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소중한 장을 마련해주신 한국심리학신문에 다시금 감사하다. 앞으로도 종종 한국심리학신문에서 다른 심꾸미의 기사를 읽으며 기자단 활동 경험을 추억할 것이다. 기자단 활동을 바탕으로 심리학을 글로 풀어내는 방법을 더 고민하고,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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