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한국심리학신문=김동연 ]
자취는 허드렛일의 반복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집안일을 도맡아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의 위대함을 경탄하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 있는 쓰레기가 거슬린다. 원룸의 단점은 쓰레기를 모아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반쓰레기야 쓰레기통에 모아 놓으면 된다지만, 매일 서너 개씩 불어나는 500밀리짜리 생수통은 어떡할 것인가. 또 저녁으로 대충 때운 통조림 캔과 뜯겨 널브러진 택배 상자는 어떡하는가. 그렇다고 재활용 쓰레기통까지 일일이 갖추자니 쓰레기와 주객전도되는 삶을 택해야 한다. 아무쪼록 기껏 더럽지나 않게 정리해 둔 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빈번한 분리수거만이 답이다.
언젠가 분리수거가 잘못된 용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밀히는 그 말 자체에는 잘못이 없고, 이 단어를 착각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집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것이고, 그것을 담당자가 ‘분리수거’해가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하긴 우리가 분리수거장(혹은 분리배출장)에서 가져올 것이 뭐가 있겠는가. 쓸 만한 가구 정도? 요즘은 그마저도 절차가 까다롭다.
주고받는 세상에서
이처럼 수거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실상 배출만 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거보다는 배출이 쉽다. 마음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받기’보다 ‘주기’가 편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면, 미국의 한 일화를 살펴보자.
A와 B는 서로 정치적인 대립각을 이룬다. 항간에서는 A가 훗날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이라고 일컫는다. 다른 사람들은 아첨을 떨며 그의 눈에 띄려 했지만, B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B는 A에게 당신 서재에 있는 진귀한 책 한 권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A는 흔쾌히 빌려주었고, 일주일 후 B는 고맙다는 내용의 메모와 함께 책을 돌려보냈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A는 B에게 인사를 건네었고, 그 일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B는 자서전에 한 구절을 남긴다.
‘당신이 친절을 베푼 사람보다 당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당신에게 친절할 것이다.’
B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따, ‘도움을 준 사람이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오히려 호감을 느끼는 현상’인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가 유래했다.
맥없이 흘러가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면, 자신을 진단해 보자. 하나, 언젠가 모르는 사람에게 정성껏 길을 알려준 적이 있는가? 둘, 가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곤 하는가? 셋, 소액이라도 기부한 경험이 있는가? 셋 중 하나만 끄덕여도 통과이다.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고맙다고 말 한마디 건넸거나 그마저도 안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괜찮게 느껴졌을 것이다. 상대의 반응과 관계없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하루가 은은히 좋았을지도 모른다.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 보자. 가족이나 지인의 생일 선물을 고른다고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한 적이 있지 않은가? 웃어른을 뵐 때, 빈손으로 가기 민망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막상 고심 끝에 선물을 드리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한결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한 일일지라도, 우리는 타인을 돕고 산다. 이처럼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는 행위는 생각보다 쉽다.
반대로 당신이 선물을 받아야 할 상황에 닥친다면, 부담으로 다가온 적이 있을 것이다. 선물을 고르라는 말에, 지난번 주고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관계를 재단해 본다. 혹은 타인이 당신에게 취한 행동에 다른 의미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의심한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주고받기가 모두 꺼려지는 상황까지 이르고야 만다.
드리는 만큼, 들이기를
그렇기에 드리는 일보다는 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들이는 것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산소는 당연하지만, 호의는 그렇지 않다. 어느 영화에서 한 배우가 말했던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라고. 오래도록 회자할 만큼 뼈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호의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지레 겁먹어 호의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차피 베풀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당신은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다.
때로는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를 역으로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오히려 좋아할 수 있다. 세상에 당연한 호의는 없다지만, 호의 없는 세상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괜찮은 세상에 산다. 당신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다. 드리는 만큼, 들이길 바란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 참고 문헌
1) 벤자민 프랭클린. (2007). 프랭클린 자서전. 경기도: 느낌이있는책
2) 브릿지 경제 [Website]. (2022). [원 클릭 시사]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
https://www.viva100.com/20220825010006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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