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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종훈 ]


지난 2월 7일, 항저우 동계 아시안 게임이 개막했다. 14일까지 일주일간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들은 아시아의 정상급 선수들과 메달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김연아, 이상화, 윤성빈(스켈레톤) 등 스포츠 스타들의 선전, 2018년 평창에서 성황리에 진행된 동계 올림픽의 영향으로 동계 스포츠에 대한 국내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특히, 이 중 피겨 스케이팅은 전설적인 선수 김연아의 존재로 2010년부터 꾸준히 최고 인기 종목을 지켜왔다. 완주 시간을 겨루는 대부분의 빙상 종목과 달리, 드넓은 아이스링크에서 혼자서 연기를 펼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관중의 시선을 온전히 홀로 감당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상상 이상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피겨 선수에게 체력, 기술, 심미성과 더불어 강한 멘탈이 요구되는 이유다.



-부담을 이겨내기 위한 심리 기술 기르기


멘탈이 피겨 스케이팅에 끼치는 영향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한국체육학회지가 국내 엘리트 빙상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불안을 조절하는 것은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심리 기술(Mental skill)을 갖춘 선수일수록 고난도 기술에 성공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선수에 비해 확연히 높았으며, 전반적인 총득점의 변동 폭이 작았다. 불안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춘 선수일수록 안정적인 저점과 메달에 필요한 높은 고점을 동시에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기술’의 영향력이 함의하는 바는 멘탈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전적으로 숙련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루틴과 심상 훈련이다. 루틴은 정해진 습관, 절차 등을 뜻하며, 선수들은 훈련 방법부터 스케이트 끈 묶는 순서까지 크고 작은 곳에서 습관을 만들어 불안을 제어한다. 경기장과 훈련장은 얼음의 질, 조명, 관중까지 환경적, 심리적 차이가 상당하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사전에 설정한 루틴을 이용해 연습과 동일한 환경을 조성한다.


심상 훈련은 퍼포먼스 당시의 이미지는 물론, 당시의 감각, 감정까지 총체적으로 연상하는 훈련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의 일종이다. 이는 점프 당시의 감정을 이해해 본인의 기술 숙련도를 파악하거나, 제삼자 입장에서 본인의 플레이를 연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 훈련은 자신감을 증진하는 것은 물론, 선수의 상태 파악과 향후 프로그램 구성에 유의미한 기반이 된다.



-백조는 빙상 위에서 자기 자신과 싸운다


이처럼 다양한 훈련을 거쳐도, 불안감을 떨쳐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살코, 러츠, 악셀 등 다양한 점프 과정에서 충분히 돌지 못하거나, 넘어지게 되면 상당한 감점을 얻게 되고, 최악의 경우 다리, 손목, 늑골 골절 등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피겨 선수들은 매 순간 자신의 선수 인생을 걸고 점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엘리트 스포츠인 피겨 선수들은 7~8살 때부터 피겨를 시작하며 이러한 부담감에 적응한다. 우리의 뇌는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을 겪을 때 본능적으로 몸을 기울이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어릴 때부터 이 느낌에 익숙해질수록 이 신호에 저항하는 정도가 강해진다. 회전 시 발생하는 현기증 등의 증상도 훈련 기간에 비례해 확연히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긴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신의 본능을 이겨낼 수 없고, 점프는 커녕 스텝을 밟는 것조차 쉽지 않다. 피겨 스케이터들이 빙상 위에서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피겨 스케이팅의 화려한 이면에는 상상 이상의 부담이 존재한다. 무수히 많은 훈련을 거쳐도, 어린 시절부터 경험을 쌓아도 이러한 압박을 이겨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선수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누린 김채연, 차준환 선수를 비롯, 아름다워 보이는 모든 피겨 선수들의 뒷모습에는 이러한 자신과의 싸움이 존재한다. 혹독하게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피겨 스케이팅이란 종목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어나는 꽃은 없다. 피겨 스케이팅이 '동계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다. 




참고문헌

1)김철용, 김병준(2022) "빙상선수의 경기력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요인 계층분석." 한국체육학회지, vol. 61, no. 3, 2022, pp. 201-215.

2)정재은, 육동원, 김병현(2007) "심리기술훈련이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경쟁상태 불안과 인지된 수행에 미치는 영향." 한국스포츠심리학회지, vol. 18, no. 1, pp. 33-55.

3)김철용, 김병준(2023) "빙상선수들의 스포츠 심리기술과 스포츠 대처 및 자신감의 관계 검증." 한국체육학회지, vol. 62, no. 2, pp. 1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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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2-24 08: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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