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은A
[한국심리학신문=김가은A ]
6개월 간의 영국 교환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째다. 보고 싶었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그렇게 먹고 싶었던 한식을 마음껏 먹었다. 분명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는데 왜인지 우울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내가 이상한 걸까 싶어 함께 파견 나갔던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친구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며 현실을 회피하고 있었다.
꿈 같은 휴가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온 직장인들도 이와 같은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평소에 느끼는 단순 ‘공부하기 싫은 상태’ 또는 ‘일하기 힘든 상태’와는 다르다. 휴가 이후에 우울감이나 불안, 무기력함, 집중력 저하, 심지어는 수면 장애까지 겪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휴가 후유증(Post-Vacation Depression)”이라 한다. 휴가 후유증을 신경심리학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학업과 업무에 지친 우리에게 휴가는 필수적이다. 꼭 비행기를 타고 멀리 그리고 오래 떠나지 않더라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 스트레스 해소와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 뇌에는 쾌락과 동기부여를 조절하는 보상 시스템(reward system)이라는 특정 신경 회로가 있다. 우리가 휴가 동안 새로운 경험이나 보상을 받으면 이 회로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어떤 일에 대한 동기와 의욕을 돋우는 역할을 하며 창의력을 자극한다.
보상 시스템은 과거에 받은 보상을 학습하고 기억하여 이후에 비슷한 자극을 받았을 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도파민 분비를 준비한다. 그러나 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예상보다 보상원이 줄어듦에 따라 도파민 분비도 전보다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게 된다. 즉, 휴가 후유증은 보상 시스템이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으면서 생기는 신경학적 적응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언제까지나 휴가라는 꿈속에 갇혀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휴가 후유증을 극복하고 또다시 알찬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극복 방법을 개인 차원과 조직적 차원으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1. 개인적 차원
(1) 일상에서 소소한 보상 및 새로움 찾기
보상 시스템이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도록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보상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좋아하는 카페를 가거나, 평소와는 다른 길로 출퇴근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것이 있다.
우리 뇌는 지금 당장의 보상뿐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보상을 기대하여 도파민을 분비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음 휴가 계획을 미리 세우거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미래에 있을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서 도파민 분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신체를 움직이면 긍정적 정서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 수치가 증가한다. 이는 휴가 후유증으로 인한 무기력함을 이겨내는 데에 효과적일 수 있다. 고강도 운동일 필요는 없으며 15분의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하다.
2. 조직적 차원
급격한 환경 변화를 완화하여 직원이 서서히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택근무나 유연 출퇴근제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휴가 후 복직한 직원이 업무에서 긍정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직원 성과를 공유하거나 칭찬을 아끼지 않는 긍정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한다.
다음 여정을 기다리며
나는 아직 교환학생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6개월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여행과 같은 특별한 순간을 찾다 보면 또 멋진 휴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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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3주간의 긴 여행 끝 일상으로 돌아와 현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우리의 뇌가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당연한 현상인 걸 깨달으니 이 자괴감이 조금은 해소가 되는 기분입니다.
하루 한번 산책이나 새로운 영감을 받아 이 휴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휴가 후유증에 대해 공감 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뇌의 보상 시스템 변화 때문이라는 과학적인 설명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덕분에 무기력한 감정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고, 스스로를 덜 탓하게 됐어요. 특히 소소한 보상 찾기나 다음 여행 계획 세우기 같은 극복 방법이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유익했어요. 앞으로는 일상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으며 긍정적으로 극복해보려구요!
기자님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몇 개월간 타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즐거움과 아쉬움이 일상 복귀로의 방해물이 되어 조금 곤란하던 차에 좋은 자극이 되는 글을 만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