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우
[한국심리학신문=채진우 ]
안톤 증후군(Anton Syndrome), 또는 안톤-바빈스키 증후군(Anton-Babinski Syndrome)은 시각 실인식증(visual anosognosia)으로도 알려진 희귀한 신경학적 증후군이다. 이는 후두엽(occipital lobe)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며, 환자는 대뇌피질성 시각 상실(cortical blindness)을 겪지만, 자신이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극도로 부정한다. 심지어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환자들은 자신이 정상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결핍된 감각 정보를 보완하기 위해 허구적 내용을 만들어낸다(혼동(confabulation)). 이 증후군의 이름은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 가브리엘 안톤(Gabriel Anton)에서 유래했다. 현재까지 보고된 사례는 28건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드문 질환이다.
안톤 증후군은 주로 뇌졸중(stroke) 이후 발생하지만, 두부 외상(head injury)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 신경과 의사 맥도날드 크리칠리(Macdonald Critchley)에 따르면, 안톤 증후군 환자들은 시각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들은 주변 가구와 부딪히거나 장애물을 넘어지는 등의 행동을 보이지만, 여전히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이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하려 시도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등의 행동도 나타난다. 이는 환자들이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병식증(anosognosia)과 결핍된 정보를 허구적으로 보완하는 혼동(confabulation)이 결합된 현상으로 설명된다.
안톤 증후군은 흔히 '맹시(blindsight)'와 비교되기도 한다. 맹시는 시각 피질의 손상으로 인해 특정 시야 영역이 보이지 않지만,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시각적 인식을 유지하는 반면, 안톤 증후군 환자는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톤 증후군 환자가 자신의 실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1. 시각 피질과 언어 영역 간의 연결 단절: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과 언어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소통하지 못해 환자가 시각 정보를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뇌의 언어 영역이 결핍된 시각 정보를 허구적으로 보완한다.
2. 대뇌 시각 연합 피질과 자아 인식 관련 뇌 영역 간의 연결 이상: 시각 연합 피질(visual association cortex), 대상회(cingulate cortex), 그리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 간의 연결 이상이 무병식증(anosognosia)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시각 정보를 과거 기억과 비교하여 자신의 결함을 인식하는 과정이 차단되는 것이다.
3. 혈관 질환에 의한 손상: 허혈성 뇌졸중(ischemic stroke)으로 인해 후두엽이 손상되면서 안톤 증후군이 발생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96세의 한 남성은 심한 두통과 시력 상실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입원했으나, 자신이 볼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뇌 MRI 검사 결과, 그의 후두엽이 허혈성 손상을 입은 것이 확인됐다.
안톤 증후군의 진단은 환자의 행동과 신경학적 검사 결과를 종합하여 이루어진다. 시각 검사를 통해 환자가 실제로 시력을 상실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환자의 반응을 통해 무병식증과 혼동이 동반되는지 평가한다.
안톤 증후군과 감별해야 할 질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대뇌 시각 장애(cerebral visual impairment)
2. 지연된 시각 발달(delayed visual development)
3. 반맹증(homonymous hemianopia)
4. 안면 인식 장애(prosopagnosia)
5. 시각 실인식증(visual agnosia)
6. 시각 무시(visual neglect)
7. 시각 지각 장애(visual perceptual disorder)
안톤 증후군은 1895년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 가브리엘 안톤(Gabriel Anton)이 처음 보고했다. 그는 청각 실인식증과 대뇌피질성 난청을 겪으며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는 69세 여성, 줄리안 호흐리이저(Juliane Hochriehser)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후 안톤은 객관적인 실명과 난청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부정하는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안톤 증후군은 주로 성인에게서 발견되지만, 아동에게서도 보고된 사례가 있다. 2007년 유럽 신경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Neurology)에는 6세 남아가 부신백질이영양증(adrenoleukodystrophy) 초기 단계에서 안톤 증후군을 보였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아이는 시력 검사에서 20/200 이하의 시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력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안톤 증후군은 문학과 대중문화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작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그의 저서 에세이(Essais)에서 시각 실인식증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실명을 부정한 한 귀족의 사례를 기록했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M.D.의 "Euphoria" 에피소드에서 안톤 증후군이 등장하며, 영화 Dogville의 등장인물 잭 맥케이(Jack McKay) 또한 안톤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말레이시아 영화 Desolasi(Desolation)는 환자들이 자신의 상상 속 세상에서 살아가며 현실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주제로 한다.
안톤 증후군은 매우 희귀한 신경학적 증후군으로, 환자가 자신의 실명을 부정하고 허구적 내용을 만들어내는 특징을 가진다. 주로 뇌졸중이나 후두엽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며,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증후군은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학적 논의에서도 흥미로운 주제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도 연구가 지속되고 있으며, 향후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환자의 진단 및 치료에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Das JM, Naqvi IA. Anton Syndrome. 2023 Apr 3. In: StatPearls [Internet]. Treasure Island (FL): StatPearls Publishing; 2025 Jan–. PMID: 3084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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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고 안톤 증후군이 단순한 시각 장애가 아니라, 뇌 손상으로 인해 자신이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신경학적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특히 무병식증과 혼동이 결합된 증상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후두엽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만큼 주로 뇌졸중 환자에게서 나타난다는 점도 신기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안톤 증후군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돼서 치료법이 개발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