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한국심리학신문=페르세우스 ]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연탄봉사를 갔습니다. 근무 일정과 여러 사정상 어쩌면 이번 겨울 마지막 봉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이날 활동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바로 이동해야 참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전날 야간근무 때 2시간 가까이 정전이 발생했던 데다 야간작업이 늦게까지 진행되어 몹시 피곤한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지라 아침에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냥 지금이라도 '오늘 가기 어렵다'라고 말을 할까 하는 유혹이었죠. 보통 봉사일 전날까지는 취소해서 인원이 급히 충원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당일 취소는 거의 결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전 10시에 집결인데 두어 시간 전에 생긴 빈자리가 채워질 리 만무하니까요.
결국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탑니다. 약속을 항상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인간적인 도리이기도 하니까요.
오늘 집결장소는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개미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판자촌입니다. 천만 관객을 기록했던 영화 <7번가의 선물>에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정말 오르막길이 장난이 아닙니다. 도로에 제설작업이 어려운 곳이라 제가 며칠 전에 언급했던 열선이 깔려있는 곳이기도 했죠.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생깁니다. 당초 18명의 인원을 모집한 상황이었는데 아홉 분이나 펑크를 내서였죠. 결국 열한 명(초등학생 아이 두 명 포함)의 봉사자가 1,000장을 연탄을 나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당일 펑크를 내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생각했지만 담당 간사님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며 당황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저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잠시 올까 말까를 고민했다는 사실에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간단한 OT를 마치고 이번에는 처음 해보는 업무를 배정받았습니다.
바로 연탄 쌓기였죠.
연탄을 들고 오는 분들에게 전달받은 뒤 창고에 차곡차곡 쌓는 일입니다. 세 번의 활동을 하는 동안 들고 가서 창고 담당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만 했었기에 생소한 일이었는데 계신 분들 중에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셔서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여러 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사시는 집이었는데 이 집 창고에 800 장을 쌓기로 합니다. 3.6kg 무게의 연탄을 800 장 쌓으니 2,700kg이 넘습니다. 창고에는 딱 연탄이 세 장 남아있더군요. 연탄 쌓는 일은 평소 쌓아뒀던 테트리스 실력을 발휘하면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지리라 생각했는데 바닥의 높낮이가 미세하게 차이가 있고 얼어서 붙어있는 연탄들이 들어오다 보니 계속 경사가 생기고 틈이 생깁니다. 쌓는 작업도 난도가 꽤 높았습니다. 높게 쌓아놓은 연탄이 무너지면 절대 안 되니 꼼꼼하게 쌓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손이 제법 많이 갔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쌓는 작업은 꽤 어렵더군요. 일단 추운 날씨에 안에서 일한다는 장점도 있는데 이 기쁨은 아주 잠시간입니다. 시작한 지 5분 만에 옷을 벗고 하고 싶을 정도로 땀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게다가 창고 안에서는 가루도 많이 생겨서 호흡기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햇빛에 반사된 공기를 보니 떠다니는 가루가 엄청 잘 보이더군요. 나중에 보니 코안에도 시커먼 가루가 많이 들어가 있었고요.
그런데 가장 큰 아쉬움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활동하는 사진이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일하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인데요. 물론 사진을 찍고 보여주기 위해서 이 활동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사랑의 연탄'에서 연탄봉사를 할 때마다 추억과 기록이 될 수 있게 그동안 단독으로 된 사진은 최소 두 장씩은 잘 챙겨주셨기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남이 찍어주는 제 자연스러운 모습은 귀하니까요.
결국 안타깝게도 제 단독샷은 뒤통수와 펑퍼짐해 보이는 등 밖에 나오지 않았죠. ㅜㅜ
800장을 다 쌓고 나니 개운하다는 느낌보다는 손과 팔과 어깨도 통증이 제법 많이 느껴져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어르신의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은 들더군요. 그리고 남은 200장을 다른 집에 가서 나르기 시작합니다.
평일 연탄봉사가 재미있는 점이 뵈었던 분들을 또 뵙는 경우가 있다는 부분이었는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기서 10년 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겨우 네 번밖에 하지 않았던 저는 그야말로 초보 중의 왕초보 수준이었던 셈이죠. 더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1,000장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을 2시간이 조금 안 된 시간 안에 모두 마무리하고 곧바로 집에 돌아옵니다. 씻고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습니다. 낮잠을 잘 안 자는 편인데 이렇게 빛의 속도로 잠든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죠.
일어나니 온몸이 쑤십니다. 머리도 많이 아팠죠. 아무래도 연탄가루를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더위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까지 겪고 나니 연탄 쌓기 작업을 꺼려 하시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음에 갔을 때도 하실 분이 없으면 하기는 할 겁니다. 일을 가리면서 하기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으니까요. 마스크도 잘 챙겨가고 더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옷을 입고 간다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사진만 얼굴 나오게 찍어달라고 부탁은 꼭! 드려야겠죠. ^^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못했는데 다음번에는 꼭 같이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 한 번 경험해보기는 했지만 고통스러움 뒤에 찾아오는 개운함과 기쁨을 벌써 잊은 듯해서 말이죠.
한 줄 요약 : 봉사의 기쁨은 고통의 시간을 거치고 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물론 사진 찍는 기쁨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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