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서윤
[한국심리학신문=허서윤 ]
사진=Unsplash
“맴매 가져와! 맴매!”
어렸을 적 잘못을 저질러 부모님께 혼날 때면 들었던 말이다. 일명 ‘사랑의 매’라고 불리며 훈육을 위해 아동을 체벌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훈육법은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의 학습 이론 중 정적 처벌(positive punishment)에 기인한 것이다. 정적 처벌이란, 특정 행동에 자극을 가하여 그 행동이 일어날 확률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체벌에 이 개념을 적용하면, 잘못된 행동에 ‘사랑의 매’라는 자극을 주어 해당 행동을 줄이는 과정이므로 정적 처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훈육 방식은 트라우마를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등 폭력의 일종으로 학대, 인권침해라는 문제를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 민법 제915조, 일명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며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였다.
중독 치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치료와 인지치료가 진행되지만, 체벌은 사용되지 않는다. 정적 처벌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처벌이 합리적이고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훈육 상황에선 체벌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중독 치료에 있어서는 합리성도, 이유의 명확성도 확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체벌이 명백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치료에 사용하지 않는다.
통증 따로, 정보 따로, 불쾌감 따로
사실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유해자극을 받을 때 3가지 서로 다른 경로가 활성화된다. 첫 번째는 피부와 근육 등에 위치한 통각 수용기를 통해 '아프다!'라고 느끼게 되는 통증 경로, 두 번째는 뇌가 ‘신체가 유해자극을 받았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정보 경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쾌감을 담당하는 뇌신경 경로이다. 이때, 불쾌감을 담당하는 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가 바로 부완핵(parabrachial nucleus)이다. 동물의 부완핵에 전기적 자극을 가해 불쾌감 경로를 활성화하면, 동물은 갑자기 모든 행동을 멈추는 동결반응을 하며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행동한다.
부완핵(parabrachial nucleus, Pb)과 고통 감지 경로/사진=Cells 2024
즉, 통증을 느끼는 경로와 유해자극을 받았다는 정보를 수용하는 경로, 그리고 불쾌감을 느끼는 경로가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완핵만 활성화하면, ‘아프다’라는 감각 그리고 ‘유해자극을 받았다’라는 사실 정보를 지각하는 것 없이 불쾌감만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고통 없이 체벌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권침해라는 문제 없이 “부정적인 행동의 소거”라는 효과만 취하며 중독 행동 치료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불쾌감으로 중독 행동을 줄일 수 있다?
Pyeon, G. H., Kim, J. H., Choi, J. S., & Jo, Y. S. (2024)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부완핵을 자극해 중독 행동을 소거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연구진들은 먼저 코카인에 중독된 쥐를 준비하였다. 쥐가 레버를 누르면 코카인이 주입되는데, 레버를 누르는 횟수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며 코카인을 더 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쥐가 약물에 완전히 중독되자, 연구진들은 레버를 눌렀을 때 코카인이 아니라 다른 것을 주었다. 바로 부완핵에 전기 자극을 준 것이다. 이때, 부완핵을 활성화하는 조건을 단순히 코카인을 주지 않는 자연 소거 조건과 비교하였다.
실험 결과, 자연 소거 조건보다 부완핵을 활성화하는 조건에서 중독 행동이 더 효과적으로 소거되는 것이 드러났다. 두 조건 모두에서 쥐가 레버를 누르는 횟수는 감소하였지만, 특히 부완핵 활성화 조건에서 그 횟수가 더 두드러지게 줄어든 것이다.
그래프 E에서 부완핵 활성화 조건(파란색 그래프)에서 자연 소거 조건(하얀색 그래프)보다 레버를 누르는 행동이 현저하게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사진=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이에 더불어 주목해 볼 만한 결과가 한 가지 더 있다. 부완핵 활성화 조건과 또 다른 조건인 신체에 강한 전기 충격 자극을 준 조건을 비교했을 때 행동 소거 효과 정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불쾌감 때문에 행동이 줄어드는 것, 그리고 불쾌감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작용해 행동이 줄어드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통증보다 불쾌감이 행동 감소에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불쾌감으로 중독 치료하기
불쾌감으로 중독 행동을 소거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중독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자가 룰렛 머신의 레버를 당길 때 부완핵을 자극하여 불쾌감을 유발해 도박과 불쾌감의 연합을 유도한다면 효과적으로 중독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중독 치료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의지와 주변인들의 지지일 것이다. 또한 인지치료와 약물치료가 일차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뇌를 직접 자극하여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일차적인 치료가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치료를 받았음에도 금단 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중독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원리를 활용한 치료 방법은 분명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Pyeon, G. H., Kim, J. H., Choi, J. S., & Jo, Y. S. (2024). Activation of CGRP neurons in the parabrachial nucleus suppresses addictive behavio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21(24), e2401929121. https://doi.org/10.1073/pnas.2401929121
2) Viellard, J., Bouali-Benazzouz, R., Benazzouz, A., & Fossat, P. (2024). Modulating Neural Circuits of Pain in Preclinical Models: Recent Insights for Future Therapeutics. Cells, 13(12), 997. https://doi.org/10.3390/cells13120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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