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우
[한국심리학신문=송연우 ]
항문 질환을 부르는 최악의 습관.
화장실을 갈 때도 손에 놓지 않는 것이 바로 핸드폰이다. 핸드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은 지금, 핸드폰을 ‘신체의 일부’로 볼 수 있을까?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저 주장에 납득할 것이다.
물론 핸드폰은 우리 몸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핸드폰을 이용한 온라인 접속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업무 목적으로 주고받는 메일, 심심할 때 종종 들어가 무작위의 흥미로운 글과 영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내 하루를 공유할 수 있는 SNS, 친구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메시지 등. 이쯤 되면 핸드폰이 나, 내가 핸드폰이 아닐까. 이런 나는 괜찮은 걸까. 나는 뭐로 정의되는 걸까.
이제는 ‘포스트 휴먼’ 시대
포스트 휴먼이란,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 공학적 진보가 이루어지며 인간의 유기체적 정체성이 사이버 기술을 통해 대체되거나 기존의 정체성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을 말한다. 포스트 휴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일정한 유전적, 약물적, 기계적 변화를 거친 ‘생물학적 포스트 휴먼’이다.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과 로봇처럼 인간과 흡사하게 설계, 제작된 인간화된 기계인 ‘인공적 포스트 휴먼’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다른 사람의 실존 안에서 현존하거나 자신 안에서 의미를 찾는 자아는 관계를 통해 형성되어 있다. 포스트 휴먼은 그런 인간의 자아 개념이 비교적 불분명하다. 생물학, 공학적 변화를 거쳐 만들어진 포스트 휴먼의 관점에서,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그렇게 그의 자아는 타자와의 확장된 상호 연계성으로 형성된다.
가상공간을 즐기는 사람들 - 온라인에서의 ‘자캐’ 놀이
‘자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자작 캐릭터’의 준말로,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자캐 커뮤니티’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를 인물로 내세워, 특정 세계관 내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만들며 노는 사이버 공간의 창작 공간이다. 즉 다양한 SNS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일종의 온라인 롤플레잉 커뮤니티다. 청소년들은 익명성이 보장되고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가능한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사이버 공간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익명의 친구들과의 관계는 청소년들의 인성과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과 형체-신체 및 복장-이 한정되어 있지만, 사이버 공간에선 자신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자아상을 교체할 수 있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욕구를 통틀어 온라인 정체성이라 한다.
문제점은 온라인 정체성이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이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는 점이다. 온라인 정체성은 현실 세계(오프라인)의 정체성에 비해 형성하기 쉽고, 물리적인 제약을 덜 받는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나 외관을 선택적으로 보여주고 다른 건 숨길 수 있다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비교적 일시적이고, 빠르게 변화하고 단발적이지만 그 형성이 쉽다는 점에서 온라인 정체성은 탐닉하기 쉬운 중독성 물질에 가깝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아 정체성
자아정체성은 선천적이거나 살아가는 동안 타자와의 교류로 얻어지는 인성적 특징의 집합체다. 그러나 새로운 활동 공간으로서 ‘사이버 공간’은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킨다. 특히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익명성은 인격이 배제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자유를 보장하고, 이에 사람은 다중 정체성(multiple identity) 문제를 겪는다. 많은 온라인 이용자가 이성과 신체 감각 기관을 이용하여 정보를 얻고 인격을 형성하는 대신, 시각과 청각에 치우쳐진 정보만을 받아들이며 파편화된 인격체로서 다중 정체성을 수행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육체의 자유, 익명성 등은 이용자의 반응을 감성적이고 환상적으로 조작한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 세계에서 ‘놀이하는 인간’을 ‘사이버 놀이 하는 인간’이 될 수 있게 했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행해지는 ‘놀이’의 개념이, 공간 정체성이 사라진 사이버 공간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 흄이 주장한 ‘자아의 다발설(the bundle theory of self)’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여러 종류의 지각들이 교차하여 하나의 다발을 이루는 곳에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누구나 내가 ‘나’라는 확신을 가지며, 그 ‘나’로서 살아가고 책임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는 다중 정체성의 영향으로 하나의 다발-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낸 주 자아로부터 뻗어 나온 복수의 자아가 다수의 사이트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결국 통합적 인격체의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
다중 정체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폴 리쾨르가 제시한 ‘내러티브 정체성(narrative identity)’를 형성하는 것이 있다. 내러티브는 삶의 작은 이야기들이 인과관계로 일관되게 ‘구성된 이야기’를 말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내러티브 정체성은 행동의 전형상화(prefiguration), 행동의 형상화(configuration)를 거쳐 완결된 독자의 재형상화(refiguration)에서 비롯된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탈체현(disembodiment)된, 파편화된 자아정체성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참고문헌
손유경. (2021). 여자 청소년의 ‘자작 캐릭터(자캐) 커뮤니티’ 활동 경험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5736318
김햇빛. (2022). 기호자본주의 시대 포스트휴먼으로 본 감성디자인 공간 연구 : 변화하는 인간의미와 가상공간의 감성적 관계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국민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65952
김대군. (2012).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아정체성 확립 방안. 倫理硏究, 1(86), 21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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