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봄이 성큼 다가왔다. 해는 길어졌고, 꽁꽁 싸맸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졌다. 춥고 외로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날씨가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 또한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레고 화창한 날씨와는 반대로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 뾰족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환절기 알레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컨디션이 안 좋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찾는다. 시리고 차가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날이 따뜻해졌지만, 오히려 나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봄날을 즐기기보다 집에 있는 날이 늘어났다. 다들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좋은 날씨와 대비되는 제 처지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봄이 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계절성 우울장애는 계절에 따라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보통 겨울철 일조량의 감소와 관련이 깊지만, 계절성 우울장애가 꼭 겨울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봄에도 무기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겨울 동안 적응한 신체 리듬이 봄을 맞이하면서 호르몬 불균형을 일으켜 감정 기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급격히 증가하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원활히 조절되지 않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스프링 피크'는 봄철에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여러 연구에서 겨울보다 봄에 자살률이 20~30% 더 높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일조량의 변화만이 아니라 계절적 요인,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에 무기력해지다
일조량에 따른 계절적 요인 외에도 봄에 무기력을 느끼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봄이 변화의 계절이라는 것이다. 봄이 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설렘을 가져다주지만, 개학, 취업, 이사, 입학 등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창우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봄철은 새 학기, 연애, 졸업, 취업, 인사이동, 새 프로젝트의 시작 등 환경적, 심리사회적 변화로 부담이 커지는 시기”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만을 초래한다고 여겨지지만, 좋은 변화에서도 스트레스는 발생한다. 예를 들어 결혼, 임신, 취업 등은 '좋은 스트레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과도하면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즉,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다.
충분히 무기력할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괜찮아질 거에요”라는 말은 봄을 맞이하면 우리를 힘들게 하던 일들이 하나둘 해결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모두에게 봄이 반가운 것은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들은 스트레스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이런 변화에 쉽게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봄이 취업 스트레스, 부의 양극화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하는 시기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본인의 나태함으로 화살을 돌릴 필요는 없다. 우리의 무기력함은 단순히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에너지가 바닥나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는 각종 변화 속에서 무기력함을 겪고 있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정적 감정과 거리두기
그렇다면 무기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 중 70~80%가 부정적인 감정이라며,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스스로를 비난하는 '셀프 가스라이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어, 시험에 떨어지거나 경쟁에서 실패했을 때 “나는 유리멘탈이야”라고 자신을 비하하는 말은 점차 무기력을 악화시킨다. 그런 부정적인 말들이 모여 자신을 가두는 틀을 만드는데. 결국 이 틀이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고, 무기력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무기력을 극복한다?
무기력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다. 그러므로 무기력을 느끼는 자신을 꾸짖거나 악담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을 더 부추기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그 시기를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윤 교수는 무기력을 '극복'하기보다는 '버텨야 하는 시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넘기기 위한 방법으로 '선행동 후 동기부여'를 제시했는데, 이는 먼저 행동을 하고 그 후에 동기를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산책을 나가보거나 바깥의 따뜻한 날씨와 벚꽃을 보며 자연스레 동기부여를 받는 것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뜻밖의 동기부여를 받으며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고갈되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무기력함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이번 봄, 우리는 무기력을 부정하지 말고, 그 자체로 인정해보자. 따뜻한 햇살 속에서 우리 자신을 조금 더 다독여 보자. 변화를 견디고, 그 속에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야말로 이 시기를 잘 지나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걸음이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밖으로 나가 햇살을 느끼며 나만의 작은 동기부여를 찾고, 그 한 걸음을 내딛어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의 변화처럼,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조혜정, 날씨 변화에 무너지는 멘털, 계절성 우울장애, 경기일보, 2025.03.03.,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223580170
2) '봄 타나' 무기력하고 싱숭생숭... 청년층 마음건강 주의보, 뉴시스, 2025.03.05.,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304_0003085640
3) 윤대현, 무기력 디톡스;지친 마음에 시동을 거는 마인드 부스팅 수업, 웅진지식하우스,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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