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많은 개인이 가장 깊은 상처를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족 안에서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아물지 않으며, 종종 한 개인의 자존감과 인간관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가족 내의 상호작용이 개인의 정서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족치료의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이론 중 하나가 바로 '사티어의 경험적 가족치료(Satir's Experiential Family Therapy)'이다.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 1916~1988)는 ‘가족치료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가족치료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기존의 분석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치료방식에서 벗어나, 경험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접근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내면을 이해하고, 상호작용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하였다. 사티어는 치료실 안에서 내담자들의 감정, 신체 언어, 자아존중감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핵심 철학은 “사람은 변화할 수 있으며, 본래 누구나 성장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티어의 이론은 '경험적'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인간이 가진 잠재력, 자기존중감, 그리고 진정한 소통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을 치료의 핵심 목표로 보았다.
특히 그녀는 ‘자기존중감(Self-esteem)’을 가장 중요한 치료 요소로 보았다. 낮은 자기존중감은 왜곡된 의사소통과 부정적인 자아개념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가족 내 갈등과 기능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사티어는 내담자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치료의 시작이라 보았다.
그녀는 가족 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방어적 의사소통 유형을 네 가지[비난형(Blamer), 회유형(Placater), 초이성형(Super-reasonable), 산만형(Irrelevant)]로 구분하였다. 이들은 모두 진정한 자기 표현을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이며,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은 가족 구성원 간의 오해와 갈등을 심화시킨다. 치료 과정에서는 이러한 패턴을 인식하고, 보다 일치형(Congruent)의 소통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사티어는 언어적 소통뿐 아니라 신체적 표현을 통한 경험적 접근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 대표적인 기법이 가족 조각(Family Sculpture)이다. 가족 조각은 각 구성원이 가족 내에서 느끼는 위치와 관계를 신체적 거리와 자세로 표현하게 하여, 내면의 감정과 가족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이다. 이 과정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던 감정을 인식하고, 변화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외에도 사티어는 '변화의 빙산 모형(The Iceberg Model)'을 통해 인간 행동의 표면 아래에 있는 감정, 인지, 기대, 갈망, 자아 등의 내적 과정을 탐색하였다. 이를 통해 내담자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유도하였다.
사티어의 경험적 가족치료는 단순히 갈등을 해소하거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 개인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단지 살아 있는 사람, 자신의 느낌을 경험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과 만난다.”
오늘날까지도 사티어의 이론은 상담 현장에서 깊은 울림을 주며, 많은 이들에게 ‘변화’는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족은 때로 아픈 기억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치유가 시작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사티어의 말처럼, 우리의 진짜 감정과 욕구, 존재를 존중받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특히 “자아존중감의 형성은 생애 초기에 어떠한 관계를 경험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이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진다. 자아존중감이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마음에 깊이 와닿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나 주요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소중한 존재인가?’, ‘내 감정은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이때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면 자아존중감도 건강하게 자라난다. 반면, 그러한 경험이 부족하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부족하게 여기거나,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기 비난에 빠질 수 있다. 결국 자아존중감은 단순한 심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관계 속에서 ‘존재를 인정받은 기억’의 총합으로 이해된다.
이 문장은 상담자로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내담자의 낮은 자존감 이면에는 반드시 과거의 상처난 관계 경험이 존재하며, 그것을 다루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또한, 자신이 어린 시절 어떤 관계 안에서 자라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며, 본인의 자존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관계적 시선’을 갖게 해주는 소중한 메시지로 느껴진다.
참고문헌
1) 김경옥. "사티어변형체계치료의 적용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16. 서울
2) 박희진. "사티어 이론에 기반한 중학교 가정과 의사소통 프로그램 개발." 국내석사학위논문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23. 충청북도
3) 김요완. "사티어 모델에서의 일치성과 자존감: 마음챙김의 매개효과와 인지적 공감의 조절된 매개효과." 차세대컨버전스정보서비스기술논문지 11.6 (2022): 667-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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