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치료를 하다 건강문제로 귀촌해 카페와 꽃집을 창업해 운영하면서 경영에 대한 남다른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아버지의 사업운영방식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온오프라인 카페 매장 운영 및 로스팅 공장 운영 실무를 보고 있으며, 동시에 각종 서적과 경영컨설턴트 출신인 남편을 통해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카페 운영에 대해 경영학적 접근만이 아닌 심리학적 관점을 더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남편과 내가 우리의 브랜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본질은 꽃도, 커피도, 달콤한 디저트도 아
니었다. 숨 가쁜 서울에서 귀촌하고 건강을 바쳐야 했던 회사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 좀 더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 나아가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가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그 여정 속에 평화롭게 잠기고자 할 때 가장 좋은 수단이 향기로운 커피와 꽃이었고 따스한 공간과 책은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2000만 원으로 시작한 월세 20만 원짜리 작은 꽃 공방/로스팅 공장에서는 추운 겨울 벽이 얇아 손이 얼어 찢어져도 힘든 줄 모르고 지치지 않고 달렸다. 장사보다, 매출보다 가치가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고, 이야기를 담은 꽃과 커피를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었다. 우리만큼 아프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하려 전력을 다했고, 그 외침은 힘든 시기에 우리를 버티게 해 준 동아줄이었다. 우리의 가치와 진정성을 보고서 볼품없는 매장에도 불구하고 방송, 신문, 잡지 등 많은 언론에서 손을 내밀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가 창업을 선택한 우리에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동종업계 사람들은 인터뷰 전문업체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놀렸고, 혹자는 감성 찾느라 돈은 언제 벌 수 있겠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다. 우리에게 당장의 생활비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이뤄온 모든 성취를 버려야 할 만큼 위험한 건강상태였고, 신체적인 건강보다 더 앞세워 다듬어야 할 것이 심리적인 건강이었다.
매출보다 메시지에 집중했고 일 년 중 반은 건강 때문에 매장 문을 열지 못했지만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하자 정신없이 성장했다. 창업 2년 만에 치킨집이었던 작은 건물을 매입하고 재투자로 이어지면서 가치보다 매출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 했고, 현금흐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졌다. 무엇보다 메뉴 개발과 시장 반응에 대한 경험도 겪어보아야 했고, 카페 운영을 몸으로 부딪혀가며 해보아야 했다. 또 한 번 로스팅 공장의 확장이 있었고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주변에는 50여 개의 새로운 카페들이 생겨났다. 전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적다는 인구 7만의 소도시에서 말이다. 이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접어들고 나니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젖어 헤매었다. 무언가를 잊고 있는 듯, 목표를 잃어버린 듯 표류하고 있었다.
처음에 전하고자 했던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이야기를 놓치고 있었다. 예쁜 먹거리를 광고하고 화려한 마실거리를 파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끝없이 나를 괴롭히는 질문은 '과연 술집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였다. 1000권 이상 꽂혀 있는 책들은 전시품에 지나지 않았다. 카페를 찾는 고객 100명 중 한두 분 정도만이 책에 관심을 보였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이만큼 쌓아놓은 브랜드와 시스템을 보고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자본이 잠식한 브랜드를 가지고 과연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직원들의 건강과 삶을 갉아먹어 성장하는 대기업에서 도망쳐 나와 시작한 일이, 다시 대기업의 자본을 통해 성장한다고 해서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밖으로, 발로 뛰던 에너지를 다시 내면으로 돌려야 할 시기였다. 다른 카페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읽고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는 딸아이와의 시간에서 영감을 얻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혹은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스스로의 문장을 통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계속 성장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정체되어 있는 물결의 일렁임에 멀미가 나서 차라리 달리는 것이 속이 시원하다. 부딪히고 깨져도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늪으로 가라앉고 만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고 이 발자국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그때도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성장하지 못해 안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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