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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 때, 혹은 받을 때 - 인간관계의 첫 걸음은 자기 수용이다.
  • 기사등록 2021-08-09 13: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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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성민 ]



픽사베이

   우리는 모든 마음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내뱉지 않는다. 내뱉어진 언어는 무언가에 휘감겨 상대에게 전달되고, 상대에 의해 또 다른 베일로 덮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와 다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한 과정일 수 있지만, 가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베일로 칭칭 감긴 언어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고의 아닌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한다. 또는 베일로 칭칭 감아 껴안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왜 그러는 걸까?


부정적 마음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




   A씨는 외모를 가꾸는데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 외모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친구 B씨는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며 외모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당당히 드러낸다. 이러한 특성으로 둘이 놀러갈 때면 A씨는 살찌는 것에 관심이 없는 척하며 배부른 양보다 더 많이 먹으려 하고, B씨는 배부른 양보다 덜 먹으려고 한다. 오늘도 함께 식당에 간 A씨와 B씨. 여느 때처럼 B씨는 살이 찔 거 같다고 말하며 음식을 먹는 것을 멈춘다. 이때 A씨도 멈추는 듯 보이자, B씨는 “더 안 먹을 거야?”라고 묻는다. 갑자기 A씨는 “너 때문에 더 못 먹겠잖아!”하고 짜증을 냈고, B씨는 상처를 받는다. A씨는 ‘먹고 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관리에 관련된 얘기를 꺼낸 B씨가 잘못한 거야’라고 합리화한다.


  A씨는 B씨에게 상처를 줄 의식적 의도는 없었다. 그런데 왜 위와 같은 반응이 나온 것일까? A씨의 속마음을 살펴보자. 완벽주의가 있는 A씨는 외모를 가꿔도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 두려워 시도하지 않아 생긴 가능성으로 ‘가능성 있는 자신’이라는 자아도취감에 빠져 외모에 관심이 없는 척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외모에 관심이 있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B의 모습에 자신이 세운 규칙이 흔들리기 시작함을 무의식적으로 느꼈고 불안해한다. 따라서 “너와 달리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지만, 너가 그렇게 만든 거야.”라며 끝까지 ‘외모에 관심 없는 자신’을 유지하려고 하며 불안감을 없앤다. 또한, 자신의 옳음에 타격을 주는 B씨의 행동에 대한 무의식적 공격심과 자신과 달리 하고 싶은 걸 당당히 하는 모습에 대한 열등감도 약간은 포함되어 있었다. 즉, “나와 달리 스스로를 꾸미는 너의 모습이 부러워. 나도 사실 외모에 관심이 많은데 완벽하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시도를 못하겠어.”라는 마음을 억압한 채, 오히려 외모에 관심이 아주 없는 척하는 반동형성과 분노 표출에 대한 합리화로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보호한 것이다. 

 

잠재기억에 따른 행동




  α씨는 교수님께 성적 확인 요청 메일을 보냈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α씨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한 분노가 어디선가 솟아 나온다. 불안과 분노는 점점 고조되면서 현재 상황에서 타당한 것으로 느끼게 되고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정성스런 메일을 보냈는데, 거절한 교수님이 잘못된 거야. 말투에서부터 학생을 배려하는 말투가 아니잖아. 내가 화나는 게 당연해.” 급기야 동기들에게 자신의 화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한다. 

 

   교수님은 수업규칙에 따라 행동한 것이기에  α씨에게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α씨는 왜 이런 지나친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교수님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비합리적 신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잠재기억(implicit memory)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명시적 기억과 잠재기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명시적 기억과 달리 잠재기억은 개인적인 과거 경험에서 기억해 내는 주관적 경험으로, 인식되지 않은 기억현상을 의미한다. 사실 α씨는 유년시절 부모님께 ‘거짓말쟁이’로 찍힌 경험이 있다. 누명을 덮어 쓰고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에 α씨는 자신의 주장이 묵살당할 때마다 그때의 불안과 분노가 몰려오곤 한다. 따라서  α씨는 지금 현재 상황을 촉발시킨 사람, 교수님을 문제의 근원으로 여기고 그 사람이 책임을 져야만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잠재기억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없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내 과거 기억이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어. 난 이럴 때마다 비합리적으로 되어 남을 판단하지.” 


❝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첫 단계, 자기수용




  자아가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적응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행동양식을 익힌 것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즉,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에게 페르소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의식이 만든 페르소나는 위험하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 채, 무의식이 만든 페르소나가 그 감정을 해결할 때 위의 사례와 같은 의도치 않은 상처의 상호작용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이 담당하는 사고를 자동적사고(automatic thinking)라고 하는데, 소중한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을 수용하여 무의식적인 시스템을 재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현재의 기분에 영향을 주는 잠재기억이 있는지, 나의 진짜 생각과 욕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기점검을 하는 방법




  자동적 사고를 받아들이고 자기수용을 위해서는 자기점검을 해야 하는데, 많은 심리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사고 변화 기록지 (Thought Change Record)를 작성하는 것이다.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TCR 작성법을 살짝 변형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 사건이나 상황을 기록한다. 두 번째로, 자동적 사고와 그것을 믿는 정도, 그리고 감정의 정도를 기록한다. 세 번째로, 상대의 표정과 같은 상황이나 마음 속 불편함과 같은 감정 혹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이성적 자아에 의해 재기되는 현 상황의 모순이나 궁금증을 적는다. 네 번째를 작성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 자동적 사고나 감정을 이끌어낸 나의 규칙이나 기억, 습관 등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때, 자신을 정당화 시키려는 욕구를 억제하고, 자신의 진짜 밑바닥을 보는 용기가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밑바닥이 있기에 자신이 가진 부정적 감정으로 혐오감에 빠지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다섯 번째로 부정적 감정을 최소화화고 합리적인 사고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작성해본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칭찬과 변화된 가치관 등을 기록한다. 위의 사례들을 예시로 사고변화기록지를 작성해보면 아래와 같다.



   정해진 형식 없이 위의 내용을 토대로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 또한, 이미 습관이 된 방어기제들은 가치관이 고쳐졌어도 고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뇌는 가장 편한 길을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고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필자는 핸드폰 메모장에 그러한 습관들을 모아서 저장해놓거나 정말 고치고 싶은 가치관은 짧게 줄여서 구호처럼 외치곤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도 우리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잘되는 모습을 배아파하곤 한 스스로의 모습을 고치고 싶어서, 절대적으로 빛나는 사람은 없으며 상대가 빛이 난다고 나의 빛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빛남의 독립'이라는 다섯글자를 자주 외치곤 한다. 

 



   우리는 흔히 솔직함에 있어서 자신있어하지만, 의식적 솔직함이 아닌 무의식적 솔직함을 완벽히 갖추고 있지는 않다. 완벽하게 스스로를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최대한의 밑바닥을 본 사람만이 수정하고 성장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로 여행하는 모험을 감수한 사람들은 치매에 걸려서도 온유함과 성숙함이 유지된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괜히 상처받을 때가 많다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자. 우리가 우리를 수용한 만큼만 타인도 우리를 수용할 수 있다.



*출처

[1] 하혜숙 (2020), 상담자가 하는 말, 에피스테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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