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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아이와 양육에 대한 고찰 -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를 읽으며
  • 기사등록 2022-09-05 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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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지은 ]



현재 한국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진입 중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적어지면서 어른들은 아이에 관한 관심과 집중이 증가한다. 청년들이 자녀를 가지지 않고 현실에 집중하는 이유는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양육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10년동안 돈을 모아도 서울에 있는 집을 사기 버거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자식이란 사치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 때 아이와 양육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출처교보문고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를 보며 계속 든 생각은 ‘아 이 책은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양육에 대한 편견에 공을 던지고 있구나’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경쟁을 강요하였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급을 나누었으며 그 결과는 아이의 존재 가치가 되었다. 사회의 차가움이 자신과 타인의 벽을 만들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나누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욕심 없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회적 분위기, 가정의 분위기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아이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분위기를 이끄는 첫 장 또한 교육의 기본은 가르치는 것이 아닌 모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책은 침팬지와 비교하며 아이에 대해 설명한다. 놀랍게도 침팬지 세계의 교육과 학습의 기본원칙은 ‘가르치지 않는 교육’ 즉, 새끼 침팬지가 어미 침팬지의 행동을 보고 모방하며 경험하는 것이 바탕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침팬지보다 고등 생물인 인간은 아이가 탐구할 기회를 박탈한다. 양육자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간섭하며 모든 탐구에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에 브레이크를



양육자의 브레이크에 대한 필자가 생각한 원인은 우리 사회가 양육 시 아이의 호기심을 중점으로 두는 것이 아닌, 부모의 호기심이 먼저라는 것에 기인한다. 이러한 사고는 아이의 탐구 가능성을 박탈하고 있으며 아이보다는 부모의 탐구와 사회가 제시하는 규준에 맞는 양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는 원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고 나아간다. 그렇다면 아이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부모의 간섭으로 생긴 한정된 길에서 찾은 희망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런 의문과 함께 책을 읽으며 가장 슬펐던 대목은 아이는 사실 엄마와 숨바꼭질하면서 아이가 즐기는 것은 숨어 있는 자신을 잘 찾아내는 ‘엄마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찾았을 때 ‘손뼉 치면서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대목이었다. 이때 아이는 반응에 집중하지만, 부모는 능력과 재능에 집중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 ·



부모 대부분이 원하는 성공한 자녀, 완벽한 아이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것은 부모와 아이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즉, 한가지의 단어와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대부분 아이는 부모의 가치관과 맞물리기 마련이며 부모는 이 점을 인지하고 발전하려는 자세와 피드백을 수용하려는 태도 그리고 아이와 대화하며 맞춰가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라는 위의 내용뿐 아니라 ADHD, 사회적 편견, 성장에 대한 아이의 부담, 행복에 관한 추구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 사회가 가졌던 양육에 대한 모순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상당하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사회가 규정한 양육을 버려라.’ 이것은 양육 그리고 양육하는 부모 또한 자신에 관한 본질적 탐구가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사회 그리고 삶의 가치



교육과 양육은 계획표처럼 정리되어 있지 않다. 어떤 것이 올바른 방법이고 좋은 방법인지 수많은 학자가 논의하였지만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어있을 뿐, 사전처럼 정리가 되어있진 않은 것이다. 이는 양육과 교육이 아이와 함께 나아가는 목적이지 완벽한 아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제시한 양육의 길에 객관적 시선을 제공하고 아이에게 맞는 맞춤 발걸음에 관한 생각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라는 책은 필자의 편견을 깼음에 큰 의미를 주었다.

 

 

행복을 위한 행복이 아닌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사회적 성장과 스스로 발전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본질이며 가치이다. 나를 가꾸고 나아가다 보면 행복에 다다른다. 경쟁만 추구하여 얻은 행복은 삶의 사소한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기에 행복의 본질적 의미 탐구가 아닌 나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나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사회 암묵적으로 제공된 양육과 같은 편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객관적 시선이 된다. 현실에 치이며 하루를 버티기 급급한 청년들이 위 책과 같이 편견에 직면하며 사회적으로 제시된 길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양육과 교육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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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환. 2014. 우리는 아이에 대해 오해를 보았다 (육아와 교육의 오해). 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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