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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최서영 ]


출처 : pixabay

※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습니다. 

30여년 동안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아내 A씨. 그녀는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며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혼 직후부터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딸에게는 물건을 던지고 욕설을 하며, 살해협박까지. 유독 그날따라 남편의 폭력 수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데… 아내는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를 흉기로 찌르기로 결심한다. 


위의 사례는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남편의 계속된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선례는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반인륜적인 살인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사법체계의 입장이다. 그러나 피해 당한 여성이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단순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기에는 배우자와 아내 간의 관계가 얽히고 설켰기 때문.


과연 매맞는 여성의 살인행위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1.  피학대 여성증후군이란?


  2. 위의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왜 학대당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내의 공통적인 심리 특성은 다음과 같다. 만성적인 우울증과 무기력감, 죄의식, 낮은 자존감과 고립감 등 지속적 학대를 받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가진 심리적인 특성이며, Walker는 이를 피학대 여성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으로 명명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가정 폭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 가지 순환 과정이 있음을 발견하여 학대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환경에서 왜 벗어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먼저, 긴장수립 단계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사소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언어폭력을 하여 아내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단계이다. 이때, 피해자는 공포와 긴장에서 벗어나고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두 번째는 격심한 구타 단계로 남편의 본격적인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행사될 때이다. 이 단계에서 여성은 심각한 상해를 입게 된다. 세번 째는 진정 단계로, 배우자가 자신의 폭력에 대하여 용서를 뉘우치거나 변명 내지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함으로써 여성에게 개선의 여지를 남긴다. 이 단계를 통해 남편은 용서를 해준 아내와 다시금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폭행은 점차 악화된다. 이때, 긴장수립단계부터 진정단계까지 계속된 폭력 순환과정은 피해자로 하여금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하게 된다(김현정 & 이수정, 2007). 




 학습된 무기력이란?



학습된 무기력이란 학습된 무력감과 같은 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스스로 상황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최정 & 차보경, 2014).

 

포기하지 않은 2마리의 개… 긍정 심리학 연구 단초로 - WEEKLY BIZ  > Analysis출처 : 조선일보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히만과 스티브 마이어의 일련의 실험을 통해 제시된 개념이다. 그들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눈 후, 각 집단에 전기충격을 주었다. 단, ‘전기충격을 조작할 수 있는가’를 변인으로 하여 A집단에는 개가 코로 조작기로 누를 시 스스로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고, 한편 B집단의 경우 몸을 모두 묶어둔 채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에서 피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C집단은 비교 집단으로 상자 안에 있었지만 아무런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았다. 과연 각 집단의 개들에게 전기충격을 주었을 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셀리히만은 세 집단에 담을 설치하여 전기 충격을 가할 시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조작했으나, 놀랍게도 A와 C집단만이 담을 넘어 전기 충격을 피했다. B집단의 경우 담이 있어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충격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였다. B집단 개들의 특성을 통해 이 실험의 요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외부의 자극이 만성적으로 나타날 시,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극복할 생각조차 안하고, 무기력을 학습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계속해서 폭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무력감이 계속 나타난다면 미래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자존감이 낮아질 뿐 아니라 수동성이 증가해 패배의식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주변 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경향이 높으며, 심각한 경우 우울, 불안 등의 정서 장애를 넘어서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     

 



 피학대 여성 증후군에 대한 재조명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가정 폭력을 당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던 결혼생활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목숨을 담보로 한 결혼생활만이 존재한다. 결국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학대 여성들은 무기력을 학습하여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떠나지 않는 상황, 폭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회는 “왜 매맞는 여성들은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하며, 학대당한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배우자를 살해한 아내에 대하여 단순 고의에 의한 살인과 다르지 않다고 판결하는 것이 형사사법체계의 현주소이다. 물론 배우자의 살해 혹은 살인미수에 그치는 행위가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가정폭력, 그리고 그 내막에 대하여는 더욱 엄중히 다루어야 할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의 사회는 가정폭력을 종식시키고자 최후 수단으로서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살해 사건을 판결할 경우 피학대 여성의 학대 경험, 그로 인한 스트레스, 가족력 등 정확한 조사를 기반으로 하여 객관적으로 판결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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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지영 and 강우예. (2013). 매맞는 여성 증후군에 대한 재조명: 학대로 인해 남편을 살해한 여성에 대한 법심리학적 접근. 한국범죄심리연구, 9(2), 25-47.

- 김현정 and 이수정. (2007). 학대남편을 살해한 피학대 여성의 판결에 관한 연구. 한국심리학회지:여성, 12(1), 43-62.

- Choi, Jung, & Cha, Bo-Kyoung. (2014). Factors Affecting Learned Helplessness in Undergraduates. Journal of Korean Public Health Nursing, 28(3), 509–521. https://doi.org/10.5932/JKPHN.2014.28.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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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10 10: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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