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The Psychology Times=김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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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왕이 될 상인가
"자네가 내 운세 좀 봐주게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 중, 수양대군은 천재 관상가 김내경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관상을 보아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관상을 믿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언론에 공개된 흉악범의 사진을 보고 '관상은 과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관상학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러 전통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사주팔자라고도 하는 명리학과 와 풍수지리학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 체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그 믿음 뒤에 숨겨진 심리학적 원리를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왜 운명을 믿을까
관상학이란, 얼굴 생김새를 보아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코가 잘생기면 재물복이 있어 부자가 될 수 있고 이마가 잘생기면 전반적인 운세가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상학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러 점술은 모두 타고난 운명이 존재한다는 사람들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목적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특정한 목적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대표적인 목적론적 사고입니다.
예를 들면, '태양이 따뜻한 열을 보내는 이유는 생명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분자가 결합하는 이유는 어떤 물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와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을 포함한 여러 문장을 사람들에게 제시한 후 5초 내의 짧은 시간 내에 진위를 판단하게 할 경우, 사람들은 목적론적 문장들을 더 강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맞춘 것만 기억한다
"내가 아는 용한 무당이 있는데 귀신같이 맞추더라니까! 또 내 친구 누구도 가서 사주를 봤는데 그 말대로 됐어."
이런 대화를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혹은 어떤 무속인이 방송에서 유명인의 구설수를 예지했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틀린 예언을 해서 유명해진 무속인이나 점을 보러 갔는데 하나도 맞지 않는 이야기만 하더라는 이야기가 기억나십니까?
아마 잘 기억나지 않거나, 그 반대보다는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주의 적중 확률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다양한 인지적 오류 중 가용성 휴리스틱 때문입니다.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s)이란 특정 사건의 발생 확률을 추정할 때, 그 사건이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용이한지에 근거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더 쉽게 떠오르는 사건의 발생 확률을 실제보다 더 높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사주가 맞는 경우를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쉽게 떠올린다면, 사람들은 사주가 맞는 확률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산과 강에 깃들어 있는 본질적인 힘
풍수지리는 땅의 형세가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되어 있다는 전통 사상입니다.
조선 초 한양 도성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숭례문을 서쪽으로 치우치게 건설하고, 현판을 세로로 배치하였다는 일화는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력을 잘 보여줍니다.
한편, 심리적 본질주의(psychological essentialism)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심리적 본질주의란 대상 안에 그것의 본질적 특성이 숨겨져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상의 본질이 일종의 힘 또는 에너지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보입니다.
동양 문화권의 기(氣), 서양 문화권의 느낌(vibe),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일대의 마나(mana)는 각자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본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 사상 또한 지형지물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속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본질주의의 한 가지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기사
참고문헌
김기훈. (2021년4월3일). 서울의 재앙을 막아라…. 정도전이 만든 9대 풍수비책. 조선일보.
도경수. (2019). 사고. 학지사.
매슈 허트슨. (2013).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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