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한국심리학신문=허정윤 ]
전 세계적으로 복잡한 인간 군중 심리의 실상이 잘 드러나는 것 중 한 분야는 바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이슈들만 봐도 계속되는 북한 김정은의 핵 위협,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팔레스타인 탄압과 그에 대응하는 아랍 세계의 여러 국가와 무장 단체들, 우크라이나를 선제공격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 과격한 발언들로 재선에 성공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 등 크고 작은 일들에서 국제 정치의 주요 지도자들의 심리를 면밀히 살필 수 있다.
국제 정치 심리학
국제 정치는 지도자들 혹은 국민들, 국가들의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하게 흐름이 바뀌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큰 사건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은 각 국가들의 상황뿐만 아니라 각 국가 지도자들의 상황과 이에 따른 계산적인 행동이 심층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이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그리고 미국이 러시아(구소련)에 대응해 대통령에 따라, 또는 시기에 따라 어떤 핵 정책을 사용해 왔는지,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견제하며 북한의 핵 확산을 저지하는지, 그리고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어떻게 국가에서 권력을 확산하는지 주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구체적인 예시로, 1962년 10월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발생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기 전 케네디 정부가 감행했던 쿠바 피그스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에서
“흐루쇼프(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가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내 생애 최악의 날이다”
라고 언급하며 소련에 나약한 모습을 내비쳤다.
미국의 나약한 반응을 본 소련은 당시 쿠바에 소련 미사일 기지를 건설해도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소련군이 쿠바에서 철수할 것을 강경하게 요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쿠바 해상봉쇄를 선언하고 소련의 배들이 봉쇄선 안쪽으로 들어올 경우 격침시킬 것이라고 아주 강력하게 경고한다.
다음 날 흐루쇼프 역시 미국 함정을 격침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미국과 소련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고 국제적인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소련이 미국의 해상봉쇄 라인을 넘지 않고 멈추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해소되었다.
언뜻 보면 소련이 미국에 대항하여 군사적인 힘을 사용할 것을 선언한 이후에 이를 철회하고 미국의 해상봉쇄 라인을 넘지 않은 것이 의아하게 보이기도 한다.
청중 비용이란?
여기서 ‘청중 비용’이라는 정치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소련의 행동을 이해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소련은 높은 청중비용을 가진 미국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청중 비용’이란 국가 지도자가 군사적인 위기 상황에서 경쟁국에 대해 무력 사용과 같은 위협적 선언을 할 경우에 군사적 행동을 실제로 이행하게 될 가능성이 민주국가 지도자가 독재국가 지도자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소련은 이전 케네디의 자신감 없는 모습에서 민주국가인 미국이 살벌하게 한 경고가 진짜라고 믿고,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독재국가보다 민주국가에서 국가 지도자의 발언이 더 신뢰성이 있을까?
제임스 피어론(James Pearon)은 민주국가 지도자는 구민이 위기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의 지도력을 감시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즉, 위기 상황이 국민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국민들은 지도자의 외교 안보 리더십을 목격하게 된다.
위기 상황이 극단적인 상태로 고조되었을 때 지도자가 원래 했던 강경한 발언을 철회해버린다면 청중들은 지도자의 발언에 대한 신뢰를 잃으며, 그만큼 지지도는 하락할 것이다,
반면, 독재국가의 경우에 지도자는 자신의 입장을 이후에 바꿔도, 청중비용이 크지 않다. 독재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도에 따라 지도자의 권력 유지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국가 지도자의 극단적인 협박은 허풍(bluffing)인 경우가 많다.
미국과 소련의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과 같이 민주국가와 독재국가 사이에 외교적, 군사적 대립이 있을 때 민주국가에서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게 되면, 독재자가 입장을 바꾸어 먼저 타협안을 제시하거나 정말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 정치에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하나의 예시에는 ‘청중 비용’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국제 정치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나타나는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국제 이슈들에 관심이 있다면 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각국의 입장과 국가 지도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분석하며 이해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Trachtenberg, M. (2012). Audience costs: An historical analysis. Security Studies, 21, 3-42.
2) 김우상. (2021). 신한국책략 4.0: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전략. 한울아카데미.
지난 기사보기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itzima1@naver.com